물질주의자에게

아워타운은 말이 많습니다. 하이퍼텍스트의 세계에선 선형적인 종이보다 50%는 짧게 써야 한다고 수사학자는 이야기 했지만 어느 사이에 타자는 손보다 빠르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워타운이 어렵다는 말을 듣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상반기 앨범을 50장이나 뽑았지만 저는 거기서 고작 몇 장의 음반을 들었고 그 보다 더 적은 음반을 샀습니다. 더 적은 음반이 빠져나간 자리를 몇 장의 mp3가 메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제가 양심적이다라고 생각했고 그 증거를 물질로 삼았었습니다. 나는 음반을 사고 너는 음반을 안사니 고로 내가 우월하다. 너의 폴더 속의 파일보다 나의 책장을 채워가고 있는 음반이 더 가치있다. 하지만 최근에 음반 사는 양과 음악 듣는 양을 생각해보니 제게는 수십장의 음반을 다운 받을 뻔뻔함과 무모함도 없지만 그렇다고 음반을 다운 안받는 것도 아닌 그냥 조금 덜 나쁜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르바이트 한 돈이 몇 푼 주머니에 들어왔길래 field records에서 겨우 2장의 음반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명이 될 것이라는 압니다. 6개월이 지나면 다시 물질로 귀의할 수 있을까요? 1년이 지나면 다시 귀의할 수 있을까요?


짤븐 도전과 실패의 기록

나의 유학준비는 작년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의 지구 신체 나이는 그때 벌써 35세였다.
나의 그때까지의 작업물은 다량이었으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원한 이 학교는 입학생의 나이제한이 만 35세였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고려했다, 하지만 학교의 성격이 개인적으로 문제가 되어(학교가 일단 예술학교다.
콘템포러리 예술 스튜디오 라는, 그리고 나는 아시다시피 예술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는 편이다.
그리고 이 학교는 뭔가 엘리트주의의 산물인 곳이라는 혐의가 짙어 보였다.)
그런 의문에 마지막까지도 결정짓지 못하다가 급하게 하룻밤만에 DHL급송으로 보냈었고
(하룻밤에 날밤까고 도큐멘트를 완성하고 DVD굽고 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예상과는 달리 서류지원에서 합격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거 뭔가 붙으리라는 예감이 있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6월 30일 오후 3시 십분까지 학교로 오라고 메일이 왔었다.
나는 당일 오후 1시 쯔음 학교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시간, 점점 긴장이 되었다.
나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다.
몇일전에 릴에 왔을 때부터 여기 다니는 학생들로부터 코멘트와 충고들을 들었다.
뉴 테크놀러지를 2년째 프로젝트에 반드시 써야 하는데 이 2년째의 프로젝트를 잘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파노라마11이라고 전시회도 하고 있는데, 여기 학생들의 졸업작품전 비슷한 전시회이다.
여기 작품들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작품들이 썩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벌써 실망하고 있었다. 이 학교에 대해서,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마도 대부분 그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실패작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은근히 붙으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한 남자가 나를 불렀다.
그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걸어 들어가는데 낯익은 음악소리가 들렸다.
내가 보낸 음악CD의 노래.
한 예술가 삘 나는 아주머니 같은 분이 인사를 했다.
프랑스어 할줄 아냐고 물으셨다. 나는 언쀼-조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프랑스어로 물어볼까 영어로 물어볼까 물어보셨고
나는 영어로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남자분과 아주머니가 조금 어색해 하셨다.
물어보시는데 영어가 조금 서투르시다.
나는 내내 영어로 대답했는데 못 알아들으시는 것도 많고 그래서 노트에다가 몇몇 단어는 표기를 해 보였다.
우선 음악이 좋았다고 하셨다.
어떤 악기를 다루는지.
어떤 음악가를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는지 물으셨고
나는 빈센트갈로를 좋아하고 그의 미니멀한 제작방식을 선호하고 영향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펫셥보이즈의 영향을 받은 일렉트로니끄 음악도 만든다고 하였다.
의외였다. 음악얘기로 시작할 줄이야. 나는 계속 내가 보낸 영화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보낸 도큐멘트의 여러가지 개념을 설명하고 1년째, 2년째의 영화작업들에 대해 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는데 얘기하는 데 나 조차도 논리적이지 못함을 깨닫고 있었다.
듣는 두분은 프랑스인에다 영어도 서투르시고, 엎친데 덮친격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느낌을 노래하는 시간을 갖고 이것이 나의 라스트 챤스였으므로
떨리는 마음으로 즉흥으로 노래했다. 눈을 감고,
다 부르고 눈을 뜨고 메르씨, 나는 미소지었고, 인사하고 나왔다.

기다리는 시간, 나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겸허히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고
예정된 시간에서 20여분이 더 지났을까, 게시판에 공고가 나왔다.
쁘띠오랄의 합격자들을 위에서 부터 아래로 훌터 내려보았다. 물론 거기에 내 이름은 없었다.
아내는 괜찮나? 물어보았다. 난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로써 나의 라스트 챤스는 아마도 적어도 네 사람의 기억속에는 있는 그런 사건이 되어
마치 하나의 단층처럼 나와 아내의 삶 속에서 존재하게 되었다.

앞으로 시험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드리고 싶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나름의 논리를 세워야 한다.
만약 이러한 시험을 프랑스에서 치른다면 프랑스어를 중급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프랑스어 질문 정도는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질문의 대답 정도는 프랑스어로 할 수 있어야 한다.(영어만 유창하게 해도 된다고 학생들이 그랬는데 이런 것은 요행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원하는 학교가 진정 자신이 가고자 하는 학교인지 되묻고 되물어 보아야 한다.
또 하나 나의 도전기에서는 ‘ 뉴테크놀로지를 반드시 사용하는’ 프로젝트를 설명해야 했는데, 그 ‘뉴테크놀로지’라는 것이 애매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콘템포러리 영화’ 만큼 손에 잡히지 않는 물체였다.
앞서 이 학교의 한 학생의 불만을 들었었다. 한국에서는 콘템포러리 영화를 접할 수 없다고, 차단되어 있다고 말이다.
내가 약 1달 동안 프랑스에서 있으면서 내가 접한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그 콘템포러리하고 뉴테크놀로지한 것들이 지금 이 시대, 이 땅에,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무지는 내 나름의 논리가 아직 정립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실패작들로 도배된 전시회 탓일까?

나의 짤븐 도전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 뒤의 젊은이들에게 충고의 글을 남긴다.

공연하나.

사라방드

릴에서 드림

파리에 있다가 릴에 오니 편안해 졌습니다.
신기하지요?><
릴에서도 북쪽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 있는 이곳은
Roubaix라고 깡촌이라고 할만합니다.
저의 큰집이 있는 경주 월성군 내남면이 생각날 정도 ‘있습니다.’
여기 조금 더 가면 벨기에 국경입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그런지 벨기에 느낌이 납니다. 얼굴을 보면.
숙소도 알게된 학생 덕분에 싸게 구했습니다.
학생이 여름방학을 맞아 비운 룸에 들어 와 있습니다.
여기 모기가 기승을 부리네요.
시험이 다음주 화요일에 있습니다.
여러가지 코멘트를 듣고 있습니다.
여기는 프로제(Project)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여기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찮지만 파리에서 실수로 초과지출 했던 점을 열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뮤지엄패스 100유로
2. 생망데 역 근처 레스토랑음식 35유로
3. 오페라 근처 레스토랑음식 45유로
4. 지하철역 벌금 50유로
5. 릴로 가는 TGV 놓쳐서 승차권 재구매 80유로
6. Electric Electric의 공연을 놓침
도합 약 60에서 70여만원을 잘 못 썼습니다.

파리에 도착했을때부터 어떤 시스템과 기계장치들이 오작동 혹은 잘 적응하지 못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코믹하니까요.

파리에서는 어떤 아랍의 문명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볼 것이 많다해도 정작 파리의 것은 잘 없는 듯합니다.
많은 것들이 과거의 것이며, 남의 나라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dirty projectors

그들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take away shows를 통해서였을 겁니다. 그리고 뉴욕에 있던 mansumansu가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해줬고 그렇게 그런 계기들로 인해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Dave Longstreth가 목청을 뜯듯이 노래 부르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가 입은 스웨터가 좋았습니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가 좋았습니다. 코러스를 넣는 맴버가 이뻐서 좋았습니다. 그들이 black flag의 노래를 부를 때도 black flag인지 몰랐습니다. mansumansu와 greem과 공연을 보며 비를 맞는 것도 즐거웠었습니다. 왜 공연이 끝나고 친구를 따라가지 않았나 되물어 봤습니다. 그랬으면 그들과 포옹 한번은 했을 수 있었을 텐데요.

새 앨범 Bitte Orca이 지난 6월 6일에 발매되었습니다. 때 이른 올해의 앨범에 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군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중적으로 변한 것 같아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금은 평이해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밴드가 인기가 많아지는 것은 좋지만 제가 좋아했던 면을 잃어버리는 것은 싫습니다. dirty projectors의 예측할 수 없었던 멜로디가, 화음이 좋았는데 클래식한 선율에 예측 가능한 고급스러움은 아쉽기만 했습니다.

정신을 놓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 을지로4가가 아닌 동대문 운동장에서 집으로 가는 5호선을 갈아타는 중이었습니다. Useful Chamber를 듣던 중에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음악이란 더 다양해지고 공고해지는 것은 아닌가. 이 곡만 해도 예전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음악이 아닌건 아니지 않은가. 기타가 있던 자리를 프로그래밍된 비트가 차지하고 있어도. 그들의 음악을 여전히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domino에서 나왔으니 한국에 라이센스도 되었으면 좋겠고 제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팝을 팝으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주신 monolab에게 감사의 말 전하면서…

몇 몇 달라진 부분은 작은 개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최근 코멘트를 확인하는 부분은 예전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개선점이 보이면 feedback해주세요.

Always Wrong


Wolf Eyes의 음반, Always Wrong이 발매가 되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리미릿 CDR과 카세트를 찍어내고 또 서브팝이 아닌 레이블에서도 꾸준하게 음반이 나오지만 Hospital Productions에서 나온 이번 음반은 정규반의 정의가 어떤지 몰라도 정규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도 Human Animal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노이즈의 내파라는 단어가 어울릴 그들의 음악은 노이즈를 떠나 묘한 싸이키델릭이 있습니다.

심란해 하는 친구에게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노이즈 음악을 즐기는 친구가 아니라 그런지 자기에겐 힘들다고 하더군요.

일단 주먹을 쥡니다. 그리고 허공에 망치질을 하듯이 주먹을 내리칩니다. 공연장이라면 맨 앞자리까지 치고 나가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옆에 사람과 부딪쳐도 신경 끄십시오. 그들이 밀어낸다면 같이 밀어내고 패댕이를 친다면 잠깐 쓰러져 있다가 일어나서 다시 주먹을 허공에 내치십시오.

그리고 입으로 그들의 음악이 비는 중간 중간 노이즈를 만들어도 좋습니다. “그그그그, 캬캬캬캬, 끼욱” 뭐 이런..머리를 흔들어도 좋지만 헤드벵잉은 하지 마세요. 목 아픕니다. 안하다가 하려면.

하지만 그런거 없이 들어도 그들의 음악은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구덩이에 떨어졌다 웃으면서 올라오는 느낌이랄까요? 떨어진다…떨어진다…

http://www.myspace.com/therealwolfeyes
그들의 마이스페이스에 신곡이 올라와 있네요.


‘환멸’에 대해서

유치한 것, 저급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브로콜리 너마저에 대한 ‘기존’ 인디 음악가들의 느낌-느낌입니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기존 인디 음악가들이 어떤 환멸감을 느끼지 않았나 합니다.
그냥 단순히 호불호 기호와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대중들로부터 받는 인기와 경제력(자본의 끌어당김)에 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가십성 기사는 얼마나 유치한지요? 여기에 휘둘려서는 안되겠지만 익명의 대중들은 휘둘리는 게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인디에서 나왔다는 대표얼굴들만 보고 기존의 인디음악가들을 대표얼굴들과 비교를 시작하게 됩니다.
단순히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연관된 문제입니다.
사람의 ‘관심’과 ‘애정도’의 문제입니다.

만약 사람들의 많은 돈과 관심을 끄는 음악이 기존의 음악가들도 보았을 때 수긍이 간다면
이렇게 비판하지 않겠지요. 들어봤을 때 이것은 별로 인데, 뭔가 잘 되고 있다면, 많은 관심을 받고 많은 돈을 번다면.
기존의 음악가들은 비교되는 관점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자족적인 음악가들이라 할지라도 보는 눈이 있고 들리는 귀가 있습니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잘 모르겠지만(저는 처음에 쌈사페에 ‘앵콜요청금지’가 나왔을 때 너무 좋아했습니다.)
추측해보건데 장기하와 얼굴들은 어떤 ‘야심’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들의 행보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들이 지녔던 그 야심과 그들의 성공가도를 기존에 활동하던 한 음악가로서 어떻게 봐야할지 난감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일말의 환멸감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환멸감을 느꼈던 것에 대해서 여기 파리에서 지금까지 특파원, 비로칸이 전해드립니다.

파리에서의 날들

안녕하세요 비로칸입니다.
파리에서의 날들을 보고합니다.
저는 여기 시험치러 왔습니다.(시험치는 곳은 파리에서 TGV로 1시간 정도 거리인 릴)
제가 영화를 배울려고 합니다.
여기 파리는 건물들이 낮고 하늘이 많이 보입니다.
한국보다 하늘을 더많이 보고 느낄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뮤지엄패스를 끊었습니다.
없던 욕심이 무한생성되었습니다.
루브르박물관, 오랑주리박물관,오르세박물관,퐁피두센터를 방문했습니다.
뮤지엄은 무덤입니다.
뮤지엄패스는 끊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매우 지치게 만듭니다.
여기는 거리마다 관광객이 넘쳐나고 관광객들은 하품도 하느라 바쁩니다.
노무현전대통령님이 자살한뒤에 블로그에는 글을 쓸수 없었습니다.
공론의 장인 여기다가 글을 씁니다.
저는 정말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어제는 말로만 듣던 씨네마떼끄프랑세즈에도 갔다 왔습니다.
지금 씨네마떼끄에서는 자끄따띠의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습니다. 저는 자끄따띠를 정말 좋아합니다.
저는 이명세 감독도 좋아하고 박기형감독님도 좋아합니다.
아내는 저보고 코메디언같다고 합니다. 개그에 소질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우디알렌보다는 장뤽고다르가 23살이후로 늘 되고 싶었습니다.

악몽같은 뮤지엄패스 4일권의 기간이 지나고 우리는 평상시처럼 행복하게 산책했습니다.
어제는 뻬르라세즈 공동묘지에 갔다왔습니다. 진짜 무덤에 갔다 왔습니다.
짐 모리슨의 묘지와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에 들렀습니다.
중국 여자 관광객은 키스하면서 사진찍느라 바쁘더군요.
저는 짐 모리슨 묘지에 와 볼줄은 정말 더 도어즈 영화볼때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자끄 따띠로 이끌어준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었는데
삐에르 리샤르라고 70년대 코디미언 영화배우입니다.
아직도 살아계신데 그의 첫 감독작 La Distrait를 고등학교때 토요명화로 보고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유선방송에서 몇번을 더 해줬는데 더 보면서 더  더  모어  모어 더 좋아해 주었습니다.
어떤 영화는 몇번 더 보면서 확실히 그것을 두번째로 보게 되었을 때 더 좋아하게 되나 봅니다.
또 그런 경우가 스즈끼 세이준하고 태풍클럽하고 또 에, 에,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라고 한 그 일본영화작자.

여기서 동양사람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눈을 피하게 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특히 프랑스사람하고 말할때면 주눅듭니다.
어릴때 여기서 1년만 살아보면 좋을것도 같습니다.
예술이라는 형식이 잘 자라날수 있는 햇빛과 하늘과 구름을 갖지고 있습니다.
이거는 프랑스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기서 여러분을 계속 더 더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어제는 생망제데프레에서 생망데까지 그제는 생망데에서 몽마르뜨까지 오늘은 또 생망데에서 샹젤리제까지
걷다가도 여기를 생각해봅니다.
제가 없어도 제가 여기 없어도 거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검표는 참으로 불쾌합니다. 그런면에서 한국은 양반입니다. 여기 공무원, 폴리스, 유니폼입고 줄서서 검표하는 RATP인간들은 어떻게하면 서민과 관광객들 등쳐먹을수 있을지 작당하는 인간들 같습니다. 저희는 500빚내고현재 여기 와 있습니다.)

자의식이 충만한 아워타운

어쩌구 저쩌구에서 논의 되는 내용을 포스트 옮기고자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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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워타운은 알고보면 지나친 과잉입니다. 누군가가 그랬는데 아워타운에선 글을 쓰려면 좀 알아야만 할 것 같다고, 어떤 진입장벽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근데 사실 저도 네이버 카페의 어느 게시판 같이 아무나 글을 쓰길 바라는 것은 아니고 일정 이상의 퀄리티가 있는 글이 올라오길 바랍니다. 놀이터가 되길 바라나 그것은 누구의 힘도 아니고 스스로의 글과 정체성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오는 놀이터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엠피3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과 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년동년안 글을 쓰고 했는데 결과는 공연소식을 올려주고 몇 몇 글을 써주는 사람이 늘은 것 입니다. 한받씨와 박다함씨가 그래서 고맙습니다. 2년 만에 나타난 동조자라고 할까요? 하지만 지친 것은 사실입니다.

아워타운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사실은 열려있다고 하나,은 아닌척 해도 과잉으로 가득찼습니다. 취향의 과잉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 위에 있는 논조로 글을 씁니다. 장기하가 난리여도 누구도 장기하에 대해 열광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히려 장기하나 다른 뜬 밴드들이 사용하는 수법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그것은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맴버들이 지나가고 제가 다시 지나가고 또 누군가가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해도 제가 초기의 맴버들에게 그랬듯이 여전히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도 제게 책임을 묻겠지요.

아워타운이 하나의 공론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주도권을 가지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였는지 누구도 아워타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무엇이 나은가에 대한 경쟁이 있었을 테고 그런 것들이 좀 더 풍요로운 아워타운을 만들었을 텐데요.

변명입니다. 변했습니다. 하지만 또 누군가가 새로운 아워타운의 색을 칠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처음에 라흐와 모노랩이 글을 쓰던 아워타운과 제가 글을 쓰던 아워타운이 달랐던 것 처럼요. 자신의 색에 따라 아워타운을 규정하려 하겠지요. 나나기타가 말했던 거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워타운이 변했다 느낀 나나기타도 아워타운에 자신의 색으로 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누군가 반응할테고 또 누가 반응을, 또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겠지요.

그냥 아워타운은 참여가 없어서 재미없어요. 그게 제가 초래한 것인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