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국에서 소포가 왔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Bridgetown 에서 날라온 씨디와 작은 메모.
일단, 메모.
Hi, Taekjoo I hope you enjoy this CD, it’s a favorite of mine and I am happy to share it with you. Be in touch, many cool new albums soon! Best wishes,
뭐 이런 내용의 메모와 포춘쿠키 알맹이. 행운의 번호는 3, 11, 25, 29, 32, 37
콜로라도 출신이라는게 중요하진 않지만 촌구석인 것 같은데 들려주는 음악은 그리 촌스럽지 않다. 사실 구글맵스에서 지도도 안찍어봤다. 요즘 인기가 많은 스타일은 로우파이한 기타에 리버브 걸린 보컬. beach fossils 들으면서 녹음이 왜….라고 외쳤다가 바로 “갸들은 하이피델리티네.”라고 할 수 있는 로우파이함. 갸들이 사는 동네가 콜로라도든 브루클린이든 캘리포니아든 어떤 젊은 애들의 정서나 상태를 대변하는 음악 같다. 그게 로키 산맥의 웅장함이나 태평양의 파도소리, 찌질한 힙스터의 냄새를 풍길지라도, 이 여름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듣기엔 정말 좋다.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앞에 영어로 다썼다.
“내가 좋아하는 음반이고 나는 이것을 너와 나누고 싶다.”
링크 걸어 놓은 레이블 홈페이지 가면 베스트트랙 2곡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 사도 한 장에 10$이니 다들 페이팔 로그인 준비하시라.
1901(그들의 새 음반에서 처음 공개되었던) 비디오를 보았을 때 들었던 단어는 2가지였다. 좋다와 지겹다. 그들의 전 음반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내용이였을 것이다. 늦은 밤, 친구들과 간 바에서 그들의 음악을 틀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나는 직원에게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좋죠?”
첫 트랙 Lisztomania의 인트로가 흘러나올 때 새삼스레 탄식하게 된다. 아, 내가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구나. 그들은 첫 트랙을 통해서 이 음반을 요약해서 듣는 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고개를 살랑 살랑 흔들리게 하는, 수줍게 스탭을 밟게 만드는 리듬과 목소리. 그들은 Liszt가 최초의 락 스타였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전 앨범을 들을 때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지하철에서 몸을 흔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들이 에디 슬리먼의 뮤즈였다는 사실 또한 이제는 별 의미없는 정보에 불과하다. 음악은 배경에 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전경으로 올라왔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다 우리가 그 때 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는지가 우선하게 되었다. 뮤직바 빛에서 R.E.M와 소닉유스의 음악을 경쟁적으로 신청하며 들었을 때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술을 마시고 그 앞 카센터 담벼락에 토를 하던 것만 기억이 나는 것 처럼.
그들의 음반을 사려하지 않았다. 음반을 살 때 한 장만 카드 결제하는 것이 미안하여 가장 눈 앞에 있던 것을 들었다. 그들의 음반은 한 장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 음반에서 그들의 모든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Wolfgang AMADEUS PHOENIX라고 써놓은 타이틀을 보고 생각했다. 생각이 이어졌다.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생각이라는 동사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 피닉스, 그들이 들어낸 자신감에 큰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피닉스에게 기대하는 것은 늘 같지 않았던가. 그런 기대감을 개인에게 대입했을 때 말할 수 없이 슬플지라도.
그들이 Steve Reich를 많이 들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단지 팝그룹이길 바라지 않는듯 했다. 그 전부터 포스트락이라는 단어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요소들을 그들 음악이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긴 시간의 트랙을 음반에 넣고 싶어했다. 나는 그들의 이런 면이 다른 밴드와 다름을 만드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것만 보여주지 않았고 들어줄 수 없는 트랙을 양산하지도 않았다.
“두 두 두 두”
주기적인 펄스는 춤을 추게 만든다. 판을 뒤짚는데 걸리는 약 20여초. 키보드로 찍은 드럼비트, 누구는 디지털로 만들어진 소리를 싫어한다고 했다. 난 그 말에 동의하지 못 했다. 르네상스 시절 음악은 수학의 일부분이였다.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사람을 들뜨게 한다. 그것이 계산된 결과이든 우연에서 출발하였던 간에 그것은 그들의 능력이고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영어 발음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들이 프랑스어로 말할 때 비로서 그들이 프랑스 밴드임을 떠올렸다. 그들의 음악을 들은지 긴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흐느적 거리며 몸을 흔들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Wolfgang인지 It’s never been…인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음악을 들었던 순간이 전경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추어 증폭기라는 것을 안 것은 조금 전 가사집을 펴봤을 때였다. 8월 8일 그의 앨범 [수성랜드]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13일 무대륙에서 그의 공연이 있었다. 그는 공연 도중에 [수성랜드]에 대해서 아마츄어증폭기의 탈을 쓴 음악이라고 하였다.
‘오로지’가 실재세계속에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대륙에서의 공연은 탈을 쓴 음악가가 한 공연이 아니었는지. 그렇기 때문에 다들 그 탈을 쓴 아츄를 믿었던 것 같고.
아마츄어증폭기의 2008년 2월 17일 팔도 인디 공연이 그의 공식적인 마지막 공연이었다. 우리는 가끔 그의 공연을 만날 수는 있었지만 기억에 의하면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 대신에 아츄와 같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이름으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눈의 피로에서 아마츄어증폭기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는 그 연관성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는 아마츄어증폭기의 소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아마츄어증폭기는 그 중 하나의 캐릭터인데, ‘결혼’과 ‘죽음’과 함께 소멸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받씨의 결혼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 존재의 의미가 소멸되었다고 믿습니다. 음악함에 있어서도 정말 개인적인 접근인 셈입니다.아마츄어증폭기의 가동에 있어서의 에너지원은 한받씨의 ‘생활’과 ‘감정’인 셈인데, 그 감정의 95퍼센트가 혼자 사는 한 남성의 그것이고, 나머지 5프로는 아버지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의 주체성과 대상이 사라짐으로 해서, 존재의 가치와 의미도 소멸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츄어증폭기의 공연을 처음 보던 그 2005년의 겨울을 떠올려보면 그는 춤을 추며 ” 쿠오다비스 도미네, 이젠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외쳤다. 녹음된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앨범의 어떤 틀을 들여다 보면 그것은 외부(마포소년소녀합창단이나 야마가타 트윅스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아마츄어증폭기 안에 오래 전 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기억하려 한다. 그 때는 몰랐다. 그리고 음반을 듣기 전까지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의 한받은 아마츄어증폭기로, 아마츄어증폭기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로 분화되었다. 결국은 한받이라는 뮤지션으로 수렴됨에 있어서 그 길목에 아마츄어증폭기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마츄어증폭기는 스스로의 탈을 쓰고 있을 것이다. 뼈를 들어내고 리얼리즘 혹은 자연주의를 표방하던 아마츄어증폭기는 표현주의로 넘어가고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스트로크의 에너지가 줄어들었을 때 엉성한 드럼 비트 위로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는 야마가타의 방법론이 추가되었다고 하지만 그 방법론은 아마츄어증폭기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처음 봤던 공연에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추리이다. 이젠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춤을 추지 않았다.
[수성랜드]를 들으면서 불꽃놀이를 떠올렸다. 화약은 높은 곳에 올라 불꽃을 만들고 재가 되어 하늘로 흩어질 것이다. 이미 화약은 재가 되었고 과거의 흔적인 불꽃을 지금에서야 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2008년 2월에 그는 소멸하였고 2008년 여름부터 한받은 아마츄어증폭기의 음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퇴행적이게도 아마츄어증폭기의 노래들이 휘발되고 있으므로 해서 그것을 기록해두자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츄어증폭기의 노래들이라는 사실에 집중했습니다. 이건 눈의피로도 아니고 야마가따 트윅스터도 아니고, 가요도 아니고, 팝도 아니고, 포크도 아니고, 펑크도 아니고, 마포소년소녀들이 부르는 합창도 아니고 아마츄어증폭기가 부른 노래들이라는 사실에 집중했습니다. 유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무거워졌고 노래나 스트로크나 목소리속에 슬픔이 내재해 있음을 알고 또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아마츄어증폭기를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보고 싶었던 아마츄어증폭기를 8월 13일에 보았으므로 아무도 그 탈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꽃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광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수성랜드]를 들으며 불꽃놀이를 떠올렸다. 불꽃이 터질 때 마다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빵 앞에서 그가 그 때의 여자친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던 모습을 가까이서 훔쳐본 적이 있다. 그 때 음악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장면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였다. [수성랜드]를 들으며 지나간 여러 지점들을 생각하였다. 나는 아마 추억할 것이다.
우리의 청춘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신촌 맥도널드 앞에서 만나 마을버스를 타고 이대 후문으로 갔던 청춘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영국에서 샀다는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친구는 어디에, 머리가 아직은 길었던 칼머리를 한 친구는 신혼여행에서 잘 돌아왔을까?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굴다리를 지나 신촌으로 되돌아갔지, 그곳이 우리의 시작점이였던 것 처럼.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어. 잠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 들었던 적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는 졸리지 않았어. 그들은 그들의 발만 바라 보며 연주했지만, 내가 본 것은 그들의 등이었지만. 내가 그들의 얼굴을 온전히 본 것은 아마도 첫 정규반이 나오고 온라인 샵에 붙은 광고 사진에서 였을거야. 지금도 길을 걷다가 만난다면 알아볼 수 없겠지. 음반 두 장 이외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그들과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은 우리들 때문에 그들을 기억하려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의 카페트를 들추어야 하지만, 알아, 그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조월의 음반을 발매 되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샀어.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초판이 다 팔려서 재판을 찍었다고 하더라. 음반을 산 뒤 듣고 싶어서 집으로 뛰어갈 그런 열정은 사라진 것 같지만, 집에 들어와서 한 일이라곤 노트북을 열고 일상적인 정보들을 채칩한 것이지만, 나는 불을 끄고 20년 전에 산 듯 하지만 한 번도 전구를 갈아 낀 기억이 없는 스탠드에 불을 켜고 그의 음악을 들었어. 왜 지금일까 라는 생각을 해. 왜 나는 지금 이 음악을 듣고 있는가를 생각해. 왜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지난 과거의 한 순간과 웃음과 그 중심에 있는 지겨운 밴드를 떠올리는 지 모르겠어. 그 때의 일상적이거나 혹은 대단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왜 지금에 와서 내게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었는지 모르겠어. ‘우리는속옷도생겼고여자친구도늘었다네’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앨범 커버를 보고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은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의 커버를 보았어. 유사점이란 이런 소소한 것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렸지만 같은 사람의 그림이라고 생각이 드는 커버 같은 것들. 다만 밴드 맴버의 이름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지만, 그들이 맴버간의 불화로 밴드를 그만두었다고 어디 다리 하나 건너 들은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이 음악을 들었을 때의 나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아무 것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는 28살이 되었고, 너는 29살이 너는 30살이, 너는 25살이, 우리는 모두 그 때의 모습일랑 남아있지 않았겠지만, 나는 궁금해. 우리가 다시 10년, 크랭키의 15주년, 서브팝의 20주년과 같은 시간을 보냈을 때, 서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을런지에 대해서. 너는 집이 비어 있을 때 종종 가서 고양이에게 밥이나 주라고 했고 나는 아직 그러지 못했지만, 너는 그들에 대한 진을 만들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 했다지만 (2009년 7월 4일인데 진행은 되고있나.) 너는 animal collective의 firework이 더 좋다고 했지만. 여전히 더운 혹은 바람이 부는 늦은 밤 거리를 걸어가 하고 싶은 것은 농담이나 하면서 자랑을 늘어놓으며 웃고 떠드는 것.
그들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take away shows를 통해서였을 겁니다. 그리고 뉴욕에 있던 mansumansu가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해줬고 그렇게 그런 계기들로 인해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Dave Longstreth가 목청을 뜯듯이 노래 부르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가 입은 스웨터가 좋았습니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가 좋았습니다. 코러스를 넣는 맴버가 이뻐서 좋았습니다. 그들이 black flag의 노래를 부를 때도 black flag인지 몰랐습니다. mansumansu와 greem과 공연을 보며 비를 맞는 것도 즐거웠었습니다. 왜 공연이 끝나고 친구를 따라가지 않았나 되물어 봤습니다. 그랬으면 그들과 포옹 한번은 했을 수 있었을 텐데요.
새 앨범 Bitte Orca이 지난 6월 6일에 발매되었습니다. 때 이른 올해의 앨범에 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군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중적으로 변한 것 같아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금은 평이해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밴드가 인기가 많아지는 것은 좋지만 제가 좋아했던 면을 잃어버리는 것은 싫습니다. dirty projectors의 예측할 수 없었던 멜로디가, 화음이 좋았는데 클래식한 선율에 예측 가능한 고급스러움은 아쉽기만 했습니다.
정신을 놓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 을지로4가가 아닌 동대문 운동장에서 집으로 가는 5호선을 갈아타는 중이었습니다. Useful Chamber를 듣던 중에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음악이란 더 다양해지고 공고해지는 것은 아닌가. 이 곡만 해도 예전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음악이 아닌건 아니지 않은가. 기타가 있던 자리를 프로그래밍된 비트가 차지하고 있어도. 그들의 음악을 여전히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domino에서 나왔으니 한국에 라이센스도 되었으면 좋겠고 제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팝을 팝으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Wolf Eyes의 음반, Always Wrong이 발매가 되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리미릿 CDR과 카세트를 찍어내고 또 서브팝이 아닌 레이블에서도 꾸준하게 음반이 나오지만 Hospital Productions에서 나온 이번 음반은 정규반의 정의가 어떤지 몰라도 정규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도 Human Animal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노이즈의 내파라는 단어가 어울릴 그들의 음악은 노이즈를 떠나 묘한 싸이키델릭이 있습니다.
심란해 하는 친구에게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노이즈 음악을 즐기는 친구가 아니라 그런지 자기에겐 힘들다고 하더군요.
일단 주먹을 쥡니다. 그리고 허공에 망치질을 하듯이 주먹을 내리칩니다. 공연장이라면 맨 앞자리까지 치고 나가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옆에 사람과 부딪쳐도 신경 끄십시오. 그들이 밀어낸다면 같이 밀어내고 패댕이를 친다면 잠깐 쓰러져 있다가 일어나서 다시 주먹을 허공에 내치십시오.
그리고 입으로 그들의 음악이 비는 중간 중간 노이즈를 만들어도 좋습니다. “그그그그, 캬캬캬캬, 끼욱” 뭐 이런..머리를 흔들어도 좋지만 헤드벵잉은 하지 마세요. 목 아픕니다. 안하다가 하려면.
하지만 그런거 없이 들어도 그들의 음악은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구덩이에 떨어졌다 웃으면서 올라오는 느낌이랄까요? 떨어진다…떨어진다…
지난 쌤에서 일본 리옷글 밴드 P-Heavy와 미내리, 스트레칭져니, 불길한 저음과 로스트클럽과 야마가따의 찬조출연까지
관람객이 150명, 프리버드에서 앵클어택, 엘루이즈, 싸이보그, 야마가따 트윅스터의 라운드로빈 2에 관람객 100명,
근처에 비트볼이 개최한 왕중왕전도 있었고 DGBD에서는 카오스클래스까지.
그날만해도 홍대 인근 라이브클럽에만 약 1000여명정도의 관객이 있지 않았을까?
최소라해도 500여명은 될 듯하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최근에 외국인들이 관람객으로, 공연기획자로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몇년전부터 이러한 기획들이 눈에 보이긴 했다.
한국인들의 공연기획이 점점 더 구태의연해지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참신함이 떨어지고 있고 더구나 ‘젊은(!)’ 밴드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열정적이고도 새로운 공연방식에 환호를 하게 되면서도
이들의 열정적인 호응에 가슴이 뛰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적극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에 한숨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 때문인지.
스트레칭져니같은 경우에도 한국인들 팬은 우리 얼굴 아는 친구들 말고 거의 없는데
외국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궁금해하며 더 좋아해주는 형국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일종의 ‘발견’인 것이다.
우리들이 하는 음악이 정말 ‘외국적(?)’인가 보다.
어떤 외국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져가 올 연말까지 작년의 갤럭시 익스프레스처럼 뜨지 못한다면 장을 담그겠다고.
하여튼, 다시 정리해보자면, 지난 토요일의 공연은 아주 흥겨웠고 개인적으로는 무리한 강행군에 힘들었으며 결론적으로
수익을 많이 발생시켰다.
여기에 많은 외국인들이 공연을 기획하여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여기에 많은 외국인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싸이보그가 공연수익이 발생하여 줄게 있다고 어제 신림으로 불러내었다.
나와 아내는 싸이보그와 그의 여친을 만나 차를 마시며 쥬스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싸이보그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의 소유자였으며 기어가 full로 돌아가는 공장장이었는데
나름대로는 논리가 있는 반짝반짝하는 청년이었다.
그는 클럽빵을 좋아하지만 분위기가 장례식장같다고 투덜댔다.
나도 물론 동의하는 바이다.
그가 한국에서 열심히 공연을 기획하여 무대에 올리고 이렇게 돈까지 주니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이 그런 역할을 해야하는 데 제기랄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창 잘 나가는 음악가들이 이러한 구질구질한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내가 누구한테 이런말을 하겠는가? 언니네 이발관? 크라잉넛? 허클베리핀?
쓰잘데기없는 학력이나 외모가지고 농담하지 말고
구체적인 ‘언급’을 매체에서 해줘야 한다.
현장에선 소수의 외국인과 한국인이 합심하여 이 씬을 풍요롭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싸이보그는 머머스룸을 참 좋아하더라.
처음 “메탈”이라는 장르를 접했을 때를 생각한다. 늦은 밤 마루에 있는 컴포넌트 앞에 앉아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이퀄라이저는 모든 영역에서 붉은 색을 왔다갔다 했다. 귀로 들리는 음악소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불 꺼진 마루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뛴 이유는 그거 아니면 정말로 음악이 충격적이었거나 아니면 알지 못 하는 다른 이유에서 였거나, 기타 등등.
Krallice의 인터뷰 한 대목을 찾아봤다. 자신들은 nature 하다고 했다. 이것은 마치 John Zorn이 자신의 음악은 맨하튼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5분안에 들을 수 있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뉴욕에 사는 그들에게는 nature는 도시의 모습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들의 음악을 들은 것은 브루클린의 바깥쪽 공터에서 열린 공연에서 였다. 약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마음이 안 든다는 표정의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서 셋팅을 하였다.
거대한 스램 존이 만들어졌다. 어디서인가 맥주를 흘리며 모자를 쓴 남자가 무대 앞으로 왔다. 무대 앞의 사람은 팔꿈치를 사용하여 그 남자를 밀어냈다. 앤드류 W.K의 티셔츠를 입고 온 인도계 여자의 가방이 터졌다. 그 위로 수 많은 발들이, 목 쉰 외침이 지나갔다. 여자는 가방을 놓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뒤엉켰다. 사진을 찍던 여자와 슬램을 하던 남자는 서로 욕을 주고 받더니 포옹을 하였다. 슬램 존 주변에 사람들이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슬램을 하던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 오면 있는 힘과 짜증을 섞어 밀쳐냈다. 밀쳐진 남자는 다시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메탈리카의 새앨범이 나왔을 때 (내 주변에선)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건즈앤로지스가 14년만에 나왔다고 해도 아무도 관심보이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메탈은 인디의 건너편 어딘가에 있지 않았었나. 차가운 바람에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들의 라이브를 들으며 팔을 격렬하게 흔들었었다. 슬램을 하고 싶었지만 가방 속의 카메라를 걱정하였다.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 그 순간을 떠올린다. 다음에는 가방을 가져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였다.
ISIS와 Pelican의 음악을 들으며 포스트락을 떠올렸다. 다양한 장르에서 시작하여 한 점으로 수렴되는 값. 그들의 음악을 듣고 메탈을 떠올리지 않았다. 친구는 그들의 음악에서 이모의 흔적을 보았다고 했다. 그들이 셋팅을 하면서 연주했던 메탈리카의 한 소절 때문이라도 나는 그런 생각을 못 해보았다. 니코 몰리의 음악은 현대 음악이 인디 음악과 어떤 식의 교류를 나누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Krallice의 음악을 들으며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친구들은 메탈이라면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지나쳐야 할 성장 시기의 경험이라고 하겠지만 친구들은 Krallice의 음악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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