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멀리 목에 DSLR을 건 동양 사람이 보이면 의례짐작으로 한국사람이겠거니 합니다. 대부분 이런 짐작은 80%의 확률로 맞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똑딱이를 많이 쓰더군요. 중국 사람들은 여기에 사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카메라를 잘 들지 않습니다. 홍대 클럽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DSLR을 들고 옵니다. 홍대 앞은 세계에서도 아마 DSLR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맨하탄과 조금 떨어진 공연장에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다들 자연스럽게 앉아서 공연을 즐겼지요. 사진을 찍으려고 안달이 난 사람은 저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Tapes n’ Tapes의 공연에선 많은 사람들이 플래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고 사진이라는 것이 밴드의 인기와 비례한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껴졌습니다.
2년 전 일본의 클럽에선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여행이라면 남는 것이 사진 뿐이라는 신조를 가진 저는 연신 셔터를 눌렀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본은 아티스트가 늘상 오니까 사진을 안 찍어도 될 거야.’ 그 날 공연을 한 미국 시카고 출신의 아티스트는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진은 경험을 피상적으로 만든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시험을 위해 읽은 글이 었지만 그 글의 어떤 면은 매우 통찰력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공연장에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grizzly bear의 공연에서 저는 사진을 찍는 관객이 아닌 100% 음악을 듣는 관객이었습니다. 뷰파인더로 공간을 좁게 보던 것에서 벗어나 공간이 주는 느낌과 공기를 울리는 파장등을 느끼며 그들의 음악을 즐겼습니다. 베이시스트의 복대를 단추가 3개는 풀린 셔츠 사이로 발견했을 때는 사진기로 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고 그들의 목소리, 화음, 분주함 등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순간은 카메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했습니다. 공연장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찼고 때로는 그들과 같이 웃고 같이 소리 지르며 즐겼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연주와 그 곳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잘 정돈된 사운드는 grizzly bear의 공연을 제가 본 최고의 공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열광했던 앨범 뒤에 나온 EP를 실망스럽게 들었었지만 직접 라이브를 보고 그들의 새 곡을 들으니 그들은 여전히 진행형 혹은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외의 음악을 음반으로만 접하는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시 훼이보릿 밴드 리스트에 그들의 이름을 올려 놓았습니다.
여행은 무언가를 계속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듭니다. 휘발되는 경험이라는 것은 기록하기 위해 안달을 부렸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찍고 메로를 하고 어떤 강박에 여행을 하는 마음은 조금 무겁기도 합니다. 지하철이 닫힐 때 나오는 방송에 귀 귀울이고 사람들의 영어를 알아 듣기 위해 한 달 가까운 시간동안 아이팟을 듣지 않았습니다. 몇 장의 바이닐을 샀지만 여행자에게 턴테이블이 아직 있을리 없습니다.
grizzly bear의 공연이 끝나고 다시 앵콜이 끝나고 강박은 찾아왔습니다. 무대 앞으로 몇 몇의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강박이 시작되기 전 부터 눈에 들어왔던 그들의 playlist는 점점 확대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물욕은 사념을 제거합니다. 사진이 없으면 대체물을 찾는 것이 여행자의 심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무대 위로 2번의 연속 점프를 하여 또 한 장의 setlist를 잡았습니다. 간절하게 달라는 사람에게 setlist를 주었습니다. 옆에선 ridiculous 라고 소리쳤습니다. 뭔가 하나 챙기니 뿌듯했습니다. 그들의 공연은 사진이 없어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내일은 20대가 되고 음악을 들은 이 후에 가장 보고 싶었던 sonic youth의 공연입니다. 사진기를 꼭 챙길 생각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생각과 많이 다릅니다. 친구에게 photo pass를 부탁했습니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Rec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