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 for 2월, 2009

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 한받 인터뷰

e0008180_49a36ab8b2b8d1

 

ourtown: 10인회는 7인회로 마무리된 건가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받: 네, 7인회인 셈이죠. 아직 일곱명이 얼굴을 보고 함께 모인 것은 아니에요. 다 음악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구요. 연습실 겸 녹음실 겸, 합주실 겸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밴드를 하다보니 녹음하고 합주하는 공간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저희 밴드만 가지고 시작하기는 부담스럽고 그래서 이런 공연장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을 구한 것이죠. 7인회의 밑바탕에는 지금의 인디씬이 정체되어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요. 여기서 새로운 흐름을 여기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ourtown: 그런 문제점은 예전에 말씀하셨던 인디-유령 개념과 상통하는 것인가요?

한받: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 때는 제게 유령이라는 개념이 좀 추상적이고, 실체를 가지지는 않고 있는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그저 음악씬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태-지렁이같은 생명체의 모습-로 보입니다. 우리는 계속 질문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해답을 찾기가 불가능할 것 같고요. 기존의 음악씬과는 완전히 다른 흐름을 파생시키고 싶습니다.

ourtown: 인디라는 유령이 없어져야 한다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개념-명칭이 생겨야 한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그런 통합적인 개념 자체를 부정하시는지요?

한받: 또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 개념을 명확히 찾지는 못했어요.

ourtown: 애초 10인회로 기획했던 모임이 7인으로 그쳐서 계획에 좀 타격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홍보는 충분히 되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받: 제가 10인회 공고를 여러 군데 하지 않았어요. 제 블로그와 아워타운이 전부였거든요.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회의적인 사람이 많아요. 그렇게 작게 모여서 뭘 시작할 수 있겠느냐, 외부 스폰(가령, 기업체로부터)을 받던지 해서 좀 더 크게, 제대로 시작(운영)하는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들을 듣죠.

ourtown: 두 군데밖에 홍보를 하지 않으셨다면 홍보가 적게된 게 7인회로 종료된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홍보를 좀 더 했으면 많이 모이지 않았을까요?

한받: 그렇죠. 10인회로 기획했던 일이 7인회로 그쳐서 타격이 분명히 있긴 있습니다만, 전 왜 그렇게 홍보를 안하고 싶을까요(웃음), 그런데 의외로 후원해주시겠다는 분들이 좀 계셔서요. 그분들은 100인회로 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공연입장료 부분에 있어서는 이것도 실험일 수 있겠지만, 7인회에서는 기부금제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처음 입장할 때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다보고 나갈 때 내는 거죠. 또 안에서는 술이나 음료수를 일절 판매하지 않고요. 오로지 음악이 주가 되는 공간(음악만이 울려퍼지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이태원이나 홍대변방, 상수동, 연남동 쪽으로 공간을 알아보고 있어요.

ourtown: 최근 주간한국과의 인터뷰를 보니 스스로를 소작농이라고 칭하셨는데요, 지금 기획하고 계신 일이 소작농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봐도 될까요?

한받: 소작농이라는 것은 사실 정확한 개념은 아닙니다. 소작농은 땅을 임대해서 소작료를 지불하고 거기서 산출되는 이익 중 일부분을 자신이 갖는 농민이잖아요. 기존에 제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받은 돈은 거의 없어요. ‘클럽’을 ‘임대할 수 있는 공간’(다른 사람의 농지)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서 저는 이벤트(쌀)를 계속 발생(생산)시켜 일정 수익(관객의 입장료-쌀의 판매)을 발생시킬 수 있게끔 하는 노동자였죠. 그게 소작농과 정확히 대응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나마 제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는 가장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자작농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가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뜻이겠죠. (다만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클럽을 우리가 만든다 할지라도 그 공간은 보증금과 월세의 임대료가 지급되는 상황이므로 소작농의 집단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 않나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질문에서 언급하셨다시피 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넘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참고 – 소작농 : 일정한 소작료를 지급하며 다른 사람의 농지를 빌려 짓는 농사. 또는 그런 농민(네이버 국어사전)

ourtown: 7인회는 소작농이 자작농이 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겠네요. 조금 쌩뚱맞은 질문일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음악을 한다는 행위는 노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요?

한받: 질이 다른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노동이란 단어가 조금 이상하게 정착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노동은 삶의 핵심이기도 하고, 주체에게 기쁨을 주는 과정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육체적인 노동도 있겠지만, 노래하는 행위나 기타치는 행위 등도 질이 다른 노동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노동의 정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 정착된 것 같습니다. 그것을 선물로 받을 수도 있겠죠. 빵이나 바다비 같은 클럽에서 공연했을 때, 공연자들이 무보수로 공연했기 때문에 희생정신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재화로 환산하지 못하는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거든요. 그걸 간과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 무대에 섦으로 인해, 관객들로부터, 또는 내 자신으로부터 받는 감동 때문에 공연을 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ourtown: 7인회의 밑바탕에는 작금의 인디씬이 정체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왜, 어떤 문제들 때문에 정체되게 된 것일까요?

한받: 어제 친구들이랑 만나서 얘기하다가 잠정적으로 결론으로 내렸는데 지금 인디 음악씬의 패악 중 하나는 모든 일원, 모든 구성원들이 다 ‘게으르다’는 거에요. 90년대 중반에 인디 음악씬이 파동되면서 많은 소비자층이 생겼었는데, 그 소비자층은 이제는 세대가 바뀌면서 거의 다 사라졌죠. 그런데 그 뒤로 새로운 소비자층을 개발하고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음악가, 비평가, 클럽주, 관객까지 모두 게을렀죠. 관객은 이 땅의 음악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고, 클럽주는 유사 시대 이래로 전혀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 구성과 함께, 수익 부분에 있어 투명하게 운영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고요, 음악가는 홍보에 대한 열의도 없이 그저 클럽에 종속될 때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또 ‘인디’라는 개념만을 붙드는 비평가들의 태도도 너무 안이했던 것 같구요. 사회는 엄청나게 자본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 고민한 것도 아니고, 그런 노력을 하는 밴드들을 조명하기보다는 ‘인디’라는 정신에 재단하기에 급급한 면이 있었죠. 실질적인 생활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도외시 한 채 ‘인디’라는 정신만 강조하니까 괴리감만 커졌구요.

ourtown: 개인적으로 비평가, 혹은 평론가들의 역할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비평가는 현장비평가일 수도 있고, 어떤 비평가는 자신의 호불호에 따른 음악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요. 어느 정도는 개인의 특정 기호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문제는 평론가가 너무 적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받: 예, 그렇죠. 비평가에 대한 제 욕심일 수도 있겠죠(웃음) 비평가들도, 음악가들도, 리스너들도 너무 자신의 취향을 맹신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다음이나 네이버에 있는 음악 커뮤니티들에서 공연에 대한 비평을 해주는 친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으니까 그런 점은 좋은 것 같아요.

ourtown: 활동 중인 평론가 분들 중에 현장비평가의 역할을 그나마 충실하게 해주시는 분들이 누가 있나요?

한받: 네이버에 음악취향Y라는 카페에서 활동하시는 전자인형, 인디락공연매니아에 가끔 공연 후기를 잘 올려주시는 분들, 아 참 팔보채라는 친구도 괜찮구요. 지금 활동하는 이름난 평론가들보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개인리스너들이 낫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ourtown: 예전에 연리목씨와의 인터뷰에서 무기획, 무홍보, 무원칙을 원칙으로 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자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7인회를 모집하신걸 보니 그 때의 무기획과 무원칙은 지켜지지 못한 것 같고요. 그 때의 생각들이 지금 7인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왜 그런 원칙을 만드셨는지도요.

한받: 맞습니다. 무원칙의 원칙이라는 게 있고, 무홍보의 홍보라는 게 있어요(웃음), 그게 제 이상향이죠. 원칙을 세우지 않았는데도 원칙이 있고,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홍보가 되는. 연합전선은 저의 개인적인 이상향이기 때문에 7인회에서 적용될 수 없는 부분이 있죠. 7인회는 일곱명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의견도 존중해야하고, 제가 독단적으로 할 수는 없고요.

ourtown: 7인회의 향후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한받: 이제 조만간 7인이 모여서, 7인회의 규칙을 작성하고, 혈서를 쓰고 그렇게 시작해보려고요.

ourtown: 7인이 누군지 알 수 있나요?

한받: 7인이 누군지 지금은 비밀입니다. 모이는대로 아워타운에 혈서를 스캔해 올리겠습니다(웃음).

ourtown: 아마츄어 증폭기로 활동하실 때는 ‘나의 음악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을 반대한다’는 얘기를 하셨었는데요, 그 뒤로 다른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해보셨잖아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지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좀 자신이 생기셨는지 궁금합니다.

한받: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때 들으면 좋다가도, 어쩔 때는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 싶기도 하고요. 저도 사람들이 많이 듣는 것에 대해 왜 제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거든요. 왠지 사람들이 많으면 그것은 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나봐요. 아니면 매력이 확 떨어진다던지..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만드는 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쥐떼를 몰고 가는 것처럼. 결국 제가 뭔가 잘못된 걸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있는거죠.

ourtown: 혹시 아마츄어 증폭기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으세요?ㅎ

한받: 가끔 생각해봅니다. ‘오로지 아마츄어증폭기를 위한 아마츄어증폭기’를 해보면 어떨까하는(웃음). 그렇지만 그건 역시 꿈같은 거겠죠.

ourtown: 한받씨의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한받: 조만간 스트레칭 져니 앨범이 나올거고요, 발매 후 순회공연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츄어 증폭기 4집 앨범도 나올 거구요.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들도 준비해보려구요.

글,사진- 민휘

st. marks엔 kims record가 없다.

nytimes 기사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간다. 김혜수가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city beat은 오뎅빠로 바뀌었고 다시 오래 지나지 않아 왓슨스로 바뀌었다. 그런 미용 마트로 바뀔 꺼 였으면 바뀌지나 말지. 지금 생각하니 점원의 ‘로스트인트뤤스뤠이션’ 발음도 매력적이었던 것 같은데…

두꺼바 두꺼바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인터넷이 모든 것을 죽이고 있다고 어느 술 자리에서 말했던 선배는 인터넷에 블로그진을 만들었다. 남아 있는 종이로 된 음악잡지 보다는 나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알듯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낭만이 없다. 그로 별로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워타운도 인터넷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난 아직도 일찍이 망해버린 MDM을 가끔 보곤 하는데 그 이유는 누런 종이를 넘겨보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 핀업걸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잡지가 종이가 아니였다면 다시 펴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레코드 샵들은 망했지만 그 자리를 꽤차고 들어온 인터넷 음원 업체들은 한 없이 구렸다. 음악을 돈 주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미니 홈피에 음악을 걸어 놓는 것 뿐이었다. 아이튠스를 바란 것도 아니다. 대자본 앞에서 어떤 사이트가 개성과 안목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판을 좋아한다. 물질인 씨디와 바이널, 테이프는 매끈한 아이팟 속에 잡히지 않는, 음질은 별반 차이 없다는 mp3이 가질 수 없는 기억을 쥐고 있다. 오래 전 나와 같이 절을 다녔던 사람은 내게 이야기 했다. 내가 선물해 준 mixtape를 아직 가지고 있다고. 하이 피델리티에서 Rob은 이야기 했다. 테이프를 녹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과 같다고. 씨디를 사서 포장을 뜯고 궁금한 마음에 집으로 달려 갔던 순간을 기억한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음악을 들었던 엠티에서 친구는 내게 the beach boys의 pet sounds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그 날 밤 라디오 헤드는 진짜인지 아닌지 논쟁이 벌어졌다. 내게 pet sounds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들려줬던 친구는 결혼을 해 지금 뉴칼레도냐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조카들이 marvin gaye의 what’s going on 바이널을 긁었을 때의 분노를. 나는 주기적으로 하드 속의 mp3를 지우지만 아쉬움이나 아까운 마음은 들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이것을 받기 위해 컴퓨터 앞에 매달렸던 시간을 생각하지만, 그 장면은 아무래도 낭만이 없다.

내가 그 곳에 처음 간 것은 union square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ST.Marks에 갔을 때 였다. 친구는 내게 좋은 레코드 샵이 있다고 나를 데려갔고, 그곳이 엄이 좋아한다는 그 레코드 가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곳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그 때는 판을 사진 못 했지만 뉴욕에 있는 짧은 시간동안 그 곳을 자주 찾아갔었다. 식당일이 끝나면 11시가 가까워 있었다. 조금 서두르기만 하면 st.marks에 있는 레코드 샵에서 판을 살 수 있었다. 12시에 점원은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 곳에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입술이 이뻤던 nico muhly의 mothertongue을 처음 본 것도 그 곳에서 였고 peter broderick의 500장 한정 바이널을 산 곳도 그 곳이었다. 아더 뮤직 또한 매력적이었지만 그 곳은 의외의 물건들이 나를 유혹하는 곳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공간은 아니였지만 금발에 턱수염에 배가 나왔던 점원을 G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모르는 사이지만 그 사내는 나를 알까? 하며 궁금해 하기도 했었다.

그 kims record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변화가 지나간 자리는 쓸쓸하다. 두꺼비는 새 집을 주겠지만 그 집은 나의 것도 아니고 우리의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킴스레코드에서 산 White Lichen의 씨디 속에는 panda bear의 알맹이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제 나는 그것을 어디서 교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CLEARANCE SALE / Shoppopo

090213_sale
-
포스트 포에틱스에서 선보이는 모든 수입음반과 일부 DVD들을
20~30% 할인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음반들이 재고가 많지 않아 조기 품절될 수 있으니 서둘러주세요!

* 온라인 스토어 Shoppopo에 가입된 회원에 한해 로그인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www.shoppopo.org

몇몇 소식들

http://bluenoise.com/video/12

http://bluenoise.com/video/5

99년의 라이브가 올라와있는 블루노이즈에서 링크. (벌써 10년이네요) 10년만에 노이즈가든의 공연 소식입니다. 말 그대로의 완벽한  재결성은 아니지만, 이 날의 노이즈가든은 윤병주씨의 로우다운 30 + 박건 라인업이라네요. 다음주 토요일 발렌타인데이를 물리치고-_- 가실분들은 미리 가셔야 할듯 싶네요. 장소는 프리버드, 오프닝은 레이니썬. 입장료는 2만원. 예매는 없는듯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연 소식. 아워타운에도 소개되었던 너비스 셧의 기타 용훈씨의 dydsu(용녀라고 표기가 되긴 하지만 본인은 dydsu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 공연이 빵에서 2월 19일 목요일에 있습니다.

myspace.com/dydsu

목요일 공연이지만, 기대하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지난번 상상마당 공연을 봤었는데, 랩탑/기타/베이스의 구성이 호기심을 자아냈고, 연주 할때 나오는 소리들이 불안불안 하기도 했지만, 기타로 슈게이징 하는 밴드가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국내 인디씬에선 주목할만한 밴드인것 같다는 생각을. 마이스페이스를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죽지 않고 돌아왔던 네버라잇이 정리하는 입장에서 책과 시디가 나올 예정입니다. 인쇄 전 불의의 사고로 약간 미뤄졌습니다.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발매 이후 공연에도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