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 for 4월, 2009

다가오는 공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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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클럽 Round4

<<진심을 너에게>>

일시 2009년 5월 9일 토요일 오후 7시
장소 라이브클럽쌤

www.ssamnet.com

입장료 : 13,000 원

미내리, 숨은 고수 오랜만에 볕을 쐬고 파이팅을 보여주겠다.
마마선, 부산에서 벼르고 벼르다 올라왔다, 부산 펑크의 맛깔스런 본때를 보여주겠다.
서교그룹사운드, 서교동은 우리가 꽉 잡고 있다, 서교동의 본토록큰롤을 들려주겠다.
엘루이즈, 우리가 바로 <진심을 너에게> 노래하는 밴드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을 거다.
전국비둘기연합, 우리가 전국 비둘기들의 힘만 업고 나왔다고는 믿지 말라. 뭐, 그렇다는 얘기다.

(파이트 클럽이 벌써 4번째 공연을 맞이하는군요. 개인적으로는 마마썬이 기대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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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avy Korea Tour 2009! (WITH 젼니 저음 어택)

2009년 5월 16일 토요일 저녁 7시 30분
라이브클럽 쌤(www.ssamnet.com)
입장료 : 예매 1만원 현매 1만 5천원

출연진 : P-heavy(from matsumoto) / 스트레칭 져니 / 불길한 저음 / 앵클 어택 / DJ : LOST CLUB(from matsumoto)

직접 준비한 공연입니다. 개인적으로 예매를 추천해드립니다.

피-헤비 (P-heavy!)

트윈 기타 + 드럼의 트리오 편성의 3인조 라이엇 걸 밴드 "P-Heavy" (악기파트도 상시 바뀜!)

멤버 구성 :
Chifumi Fujisawa(Vo,G,Dr) and Nami Noguchi(Vo,G), Masako Mimura(Dr.G.Vo).

1998년, 후지자와 치후미(보컬, 기타, 드럼)와 노구치 나미(보컬, 기타)가 일본을 방문한 미국의 K records 소속 밴드 "The Crabs"의 라이브에서 눈깔사탕으로 관중을 열광시키던 퍼포먼스에 매료되어(웃음) 참을 수 없어 밴드에게 말을 걸게 되었던 일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The Crabs의 멤버로서 투어에 동행하고 있던 Sarah Dougher에게 들었던 "이곳(마츠모토, P-heavy의 고향)에는 걸 밴드가 없군요"라는 한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Riot Grrrl 이라 불렸던 밴드들의 음악에는 귀기울이면서 어째서 밴드를 하지 않았을까? 라고 단순한 사실에 이끌렸던 두 명은 결국 밴드를 하기로 다짐했고, 1999년에 후지자와가 일하고 있던 레코드가게에 종종 들렀던 멋진 여자, 미무라 마사코(드럼, 기타, 보컬)와 함께 "Heavy Peatting"을 결성! 전혀 악기를 연주해 본 적이 없는 3명은 라이브와 연습을 열심히 반복하면서 자작곡 3곡으로 대망의 첫번째 라이브를 감행하였다. 이후 "The Crabs" 의 2번째 일본 투어에서 같이 무대에 서게되는 결과를 이루어냈다. 그 때부터 밴드명을 정식으로 현재의 "P-Heavy"라고 바꾸었다. (myspace.com/pheavy)

LOST CLUB

야마구치 토모야의 프로젝트 "LOST CLUB"

94 년 Smooth3 결성, 99년 해체 후 Soundot,  Lost Club, Secret Func 등의 이름으로 활동. DJ로도 활동중. 마츠모토에 살고 있던 P-Heavy와는 Smooth3 시절에 만나서 쭉 친구로 지내왔으며, P-heavy 멤버들과 밴드를 잠시 한적도 있다. P-heavy의 앨범 발매을 축하해, P-heavy의 곡을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한 리믹스 앨범을 내기도 했다.

스트레칭 져니(Stretching Journey)

스트레칭 져니(Stretching Journey)는 극동함대 잠수병 출신 남성 4인조 록큰롤 밴드이다.
스트레칭 져니라는 이름은 예술가 최윤성군이 제작한 동명의 ‘비디오작품’에서 따왔다.

멤버 소개를 하면, 리드 기타, 보컬에 백재중(36세), 리듬 기타, 보컬에 최윤성(29세), 베이스 기타, 보컬에 한받(36세), 드럼, 보컬에 허찬(30세)으로 구성되어 있다. 멤버들은 다방면에 걸친 예술가들이다. 2006년 여름에 결성되었으며 중간에 드럼이 한번 교체된 것 말고 멤버교체는 없었다.
원래는 펑크음악을 하려고 모였으나 멤버들의 성향이 결합되어 나오는 음악은 펑크보다는 포스트 혹은 프로토 펑크 스타일에 가까운 하드한 록음악이다.
2009년 4월에 첫번째 앨범을 자체제작 발매하였다. (club.cyworld.com/1234uck)

앵클 어택(Ankle Attack)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다가 결성된 앵클어택은 사람들이 말하는 앵클어택의 수많은 음악 장르에 비해 본인들은 정작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3인조 록 밴드 음악이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있다.  (myspace.com/ankleattack)

불길한 저음(Master Musik)

불길한 저음(영문명: Master Musik)은 박승준의 프로젝트인 The Flicker Begins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시끄럽고 폭력적인 노이즈 공연을 꿈꿔왔던 Astronoise의 멤버인 최준용과 홍철기는 The Flicker Begins의 공연을 보고 그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2006년 여름 프린지페스티벌에 The Flicker Begins로 사토 유키에(기타), 유병서(드럼)와 함께 참가하여 100명 가까이 되는 관객들이 전원 나가버리게 만드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후 조금씩 다른 조합으로 몇 차례의 공연을 했으나 보다 굳건한 밴드의 모습을 갖출 필요성을 느꼈다. 때마침 데스메탈 밴드에서 활동했던 베이시스트인 김곡(Bassanarchist라는 이름으로 Astronoise와 2003년도에 같이 공연함)이 데스메탈/그라인드코어와 노이즈가 결합된 밴드를 구상하고 있었다. 김곡의 그라울링 보컬과 폭주베이스는 노이즈에 새로운 면을 더해주었고 몇 번의 합주실 기물 파손을 통해 불길한 저음은 탄생하게 되었다. 첫 공연은 2007년 여름에 스컹크헬에서 있었던 펑크밴드 Reanimator의 앨범발매 기념공연으로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 공연은 박승준이 직접 기획한 공연인 You Are Never Right 공연으로 첫 번째 공연 이후 영입한 장여사의 고음 스크리밍 보컬을 처음 선보였던 공연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타국에서 건너온 열혈 파워 드러머 겸 노이즈 기타리스트인 마이클 오클리를 영입하여 보위에서 공연을 하였고, 곧이어 있었던 오프도시에서의 공연 또한 인근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마쳤다.

때는 잔인한 4월의 밤, 추억의 코트를 꺼내 입으며-우리는 속옷도 챙겼었었고 여자친구도 늘어났었으며

아워타운에서의 지속적인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응원과 지원, 관심 주시는 분들께 한가지 희소식일까?하는 소식을 전해드리러
이 글을 포스팅합니다. 광고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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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3집 앨범 [소년중앙] 이나 1집, [29세의 자위대] 의 노래를 듣고자 하셨지만 시디를 구하시지 못하여
못 들으셨던 분들의 소원을 풀어드리고저 앨범의 음원들을 판매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무상으로 드리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엄연히 노래 ‘생산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워타운 밖에는 제가 어울리게 홍보할 곳을 잘 생각지 못하겠습니다.
제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은 가 봅니다. 상당히 로컬한듯한……
그래서 솔직히 제가 단골손님을 접대하는듯한 이상한 기분도 있습니다,ㅠ.ㅠ -단골손님이 있어야 장사가 되지….라는
(저는 웨이브 후리보드에 광고하지 않겠습니다, 가슴에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즘에도 하지 않겠습니다. ‘보다’는 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기간은 5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45일간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마츄어증폭기 음원 미리듣기 게시판에서 음원들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글은 확실히 광고글이며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알고 있습니다.
아워타운이여, 영원하라, 게다가 10인회여, 더욱더 의기양양하라!~
감사합니다.

아마츄어증폭기

아마츄어증폭기 @ 무대륙 4-2-2009

나는 모르겠습니다. 왜 아마츄어증폭기가 아츄여야만 하는지. 눈의피로를 하면서 끊임없이 아마추억증폭기를 불러 일으키는지. 아마도 그는 이에 대한 질문을 답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듣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를 때 좋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좀 뒤늦은 이야기 입니다만 오랜만에 아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공연을 처음 본 뒤 많이도 아마츄어증폭기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20대가, 대학생이, 청춘이 들어야 할 음악은 그의 음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세대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20대가 지났고 결혼도 했고, 살도 찌고, 네, 그랬지만 여전히 그 믿음은 유효합니다. 우리는 웃었고 춤을 추며 즐거웠으며 그는 땀을 흘렸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는 문 밖으로 나갔지만 따라나선 것은 몇 명의 소수였습니다. 움직이지 못 한 것은 아무도 그가 따라오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해 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우리라고 하지만, 저는, 그 밤이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아요. 네, 그럴 것 같아요.


속옷밴드를 추억하는 사람들

추억, 속옷밴드

2006년에 잠정 해체한 “속옷밴드”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은 작은 책자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인터뷰, 공연 후기, 사진 한 장, 짧은 글 등으로
팬이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이 참여 대상입니다.

주저마시고 연락주세요.

이메일 주소 : hansol@gmail.com

할수 있는 자가 구하라(카라 아님)

한창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24시간 도서관에선 평소엔 볼수없던 사람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라디오에선 시험 잘보게 해주세요 DJ누나 오빠라는 간절한 소망들이 들리는 가운데, 날씨는 예전보다 변덕이 심하고 춥군요, 겨울과 여름 사이에서 입을 옷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워타운의 글 쓰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써봐야 안다는.

작년 일본 방문기를 생각해봅니다. 우연히 서울에서 만난 라디오 아티스트 코가와 테츠오 씨를 일본에서 다시 만나게 된건 우연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의 수업에 초청되었고, 무려 3시간 동안 공연과 강연을 해야 했습니다. 교양 수업이었지만, 상당히 많은 (전형적으로 일본 틴에이져들) 학생들이 수업 전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무척이나 긴장되었습니다.  이야기들 사이에서, 질문이 날아왔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씬을 이야기 해주세요.  갑자기 무언가 꽉 막히고, (제가 경험해본적도 없지만, 간접적 텍스트로만 접하던) 대기업 입사면접의 상황같이 머리가 하얗게 변했습니다. 저는 준비해간 자료를 포기하고, 닻올림의 유튜브 영상과 지하보도에서의 구남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입니다.  (왜냐면 나머지 상황에서는 준비한 자료를 프리젠테이션 하긴 했지만, 너무 떨려서 기억도 나지 않고, 너무나도 적극적이어서 말을 잇기가 힘든 상황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년의 지하보도의 공연들을 잊을수 없습니다. 머머스룸이 장비를 놓고 자유롭게 했던 공연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보도에 서서 보았던 공연, 피아노가 지하보도에 들어와서 했던 풍경도, 물론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은 짧았지만, 기억 할만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올해 여름의 지하보도를 기대해봅니다.)

타국에서 구남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으니, 기이하고도 생경한 순간이었는데요, 묘한 쾌감을 느끼며, 강연을 이어나갔습니다. 다행히도 강연은 마무리되었고, 맛있는 커리와 즐거운 대화들을 뒤로 한채, 저는 남은 일본에서의 시간을 인디펜던드 관련 샵들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그 중에 IRA(IRREGULAR RHYTHM ASYLUM)라는 샵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전에 방문했던 지인의 소개로 이 곳 주인과는 미리 연락을 하고 있던 참이라 다른 곳들보다 주인과 편하게 이야기를 할수 있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너무 많은 진들과 시디들을 보면서 수많은 물건들에 비례해 너무나도 적은 금전상태를 생각하며,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그리하여 사게 된 시디가 도쿄에서 버스로 두시간 정도 위치에 떨어져있다는 마츠모토라는 곳에서 라이엇 걸 음악을 하고 있는 3인조 밴드 P-heavy 의 1집 셀프 타이틀 앨범입니다.

앨범을 들은 후, 궁금한 점이 있어 메일을 보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음악 잘 들었다로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은 자신들이 사는 마츠모토라는 곳에서 파이트클럽 같이 자발적인 공연 시리즈를 헤어살롱(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사진을 보니깐 구청의 미용실이었습니다.) 에서 정기적으로 해오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씬이 기본적으로 크고 역사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던 바인데, 이런식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오거나이징에 대해서 또 다시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제가 함부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누군가 한국의 인디씬은 도쿄에 비교하긴 너무 작고, 후쿠오카 정도가 적당할것 이다 라고 말했지만, 저는 마츠모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폄하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지속적으로 연락을 5개월 정도 하던 중에, 자비로 투어를 오겠다는 의사를 듣게 되고, 이렇게 하여 P-heavy가 한국에 오게 됩니다. 또다시 우연입니다.

갑자기 지금은 활동을 멈춘 퉁의 윤정씨가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한때 퉁의 공연을 자주 다니며, 공연 기획을 많이 물어보기도 했었죠. 퉁의 공연도 이런 경로로 공연이 성사가 되었던 것일까요.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알고보니 P-heavy 앨범이 나온 레이블 타이틀에 Ni-hao도 있군요. 그래서 생각이 나는걸지도 모릅니다). 공연이 성사된 지금에는 많은 생각이 듭니다. 세상 만사가 알수 업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런 일들이 일어날때마다 인터넷이라는 환경에 대해서 반갑기도 하지만 다른 생각이 들긴 합니다.

결론은 5월 16일 쌈지스페이스에서 P-heavy와 젼니 저음 어택과의 공연이 있습니다. 젼니 저음 어택이 누구냐고요? 받씨의 아이디어에서 나왔습니다. 스트레칭 져니와 불길한 저음과 앵클 어택의 유니트를 부르는 말인데, 묘한 어감이 좋습니다. 고다르는 할수 있는자가 구하라고 했습니다. (고다르 오덕..) 물론 5월 16일엔 다른 큰 공연도 많고 다른 행사도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쓸수 없는 이런 장문의 글로 아워타운에서 홍보를 하고 싶었을뿐입니다. 구할수 있는 자들은 와서 공연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구할수 있는자는 곧 무언가 할수 있을꺼라는 생각이.. (뭐라는거니) 입구에서 박다함을 찾아주세요 (마지막은 개그만화 센스로..)

5월 16일 쌈지스페이스 P-heavy Korea Tour 2009! (헤비 젼니 저음 어택!)

P-heavy / 스트레칭 져니/ 불길한 저음/ 앵클 어택 / DJ : LOST CLUB

시작은 이렇게 : 어쩌다가 새벽에 깨어있게 되었지만, 할일이 없어 이글을 쓴다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ㅠㅠ

오늘,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싱킹 옵 타이타닉 연주를 끝내고, 뒷풀이에서 나온 말들. 신기한 경험이었어. 왜? 이런 연주를 하는데 여성분들이 많이 와서 놀랐어. 전자양이랑 로로스 때문이지. 뭐 라는 말을 들으며 쉽게 수긍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네버라잇을 하면서 가끔 새로운 밴드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관객 동원을 생각해서 네임 밸류가 있는 밴드를 찾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물론 선정의 취향을 아예 저버린건 아니었다. 단지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뿐이라고 변명해본다. 다시 뒷풀이로 돌아가자면, 바다 건너의 예시도 술자리에 엎질러진다. 맷 구스탑손을 봐. 어쩔때는 10명 앞에서 연주하다가도 소닉유스랑 공연하면 천명 앞에 두고 공연하잖아. 그런 사람이 필요한거야. 그렇다. 사실 나의 경우도 약 2년전의 경우를 잊을수 없다. 철기형이 논문으로 바빠서 대타로 연주하게 된 헤이리에서의 연주. 짐 오루크, 오토모 요시히데, 카히미 카리에를 보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무언가 생각이 달라지는 점이 있었다. 시간은 조크셔틀처럼 이리 저리 돌려, 작년 겨울의 홍대 동방으로, 아워타운과의 대화로. 일종의 낚시가 필요해요. 사실 이 글에서 나온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쉽사리 내가 동의할수 없으나, 쉽게 수긍할수 없으나 결국에는 (방법이 없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에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따라 울며 겨자먹기라는 말이 머리 속에서 자주 생각난다. 지금까지 출석도 다하고 어려운 과제도 다해왔는데, 그룹 과제 때문에 이 과목을 포강할수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를 우린 해야한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여자분은 연주자 시작되기전, 무언가 기대한 얼굴로 앉아있었는데(무엇때문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의 표정을 보이며, 나가버렸다. 두서없이 생각가는대로 이야기해봤다.

valerie님이 글을 쓰기 어렵다는 아워타운에 가끔 이렇게 들어와서 두서없이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다른 일들도 있어 약간 정신이 없을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정리하는 글들을 가끔 써보려고 한다.

다른 화제로 돌려보자. 어제 정확히 말하자면 그제 밤, 나는 일본에서 여성주의 관련으로 진(자가출판물)을 만드는 분을 만나 스트레칭 져니의 공연을 보았다. 사우쓰베이와 타바코주스는 사정으로 연주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트레칭 져니는 그날 1부과 2부로 나눠서 연주를 했다. 이름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차분한 템포로 나의 오코노미야끼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로 시작한 1부는 주로 한받씨의 멘트 진행으로 공연이 이루어졌다. 사실 1부에서의 져니는 약간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공연을 하는듯 했고, 약간 보는 나마저 당황스러웠다. 베이스와 기타 소리는 가끔씩 세팅이 엇나갔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져니의 1부가 끝나고 부나비의 무대가 이어졌다. 평상시의 부나비와 다르게 이날의 부나비는 드럼과 같이 이루어졌다. 반복되는 구절과 드럼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이날의 부나비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2부의 져니가 등장햇다. 앨범에서 좋아했던 좋았던 곡인 첨밀밀을 시작으로 앨범에 들어가 있지 않은 신곡들을 연주했는데, 2부의 져니들은 더 편안하게 느껴졌으며,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다. 좋은 공연에 비해서 빈 관객의 자리는 아쉬웠다. 최근 받씨는 첫번째 앨범 발매 공연을 끝내고 많은 생각이 들었나보다. 갑자기 생각은 다시 작년 여름으로 돌아가 내가 세션 멤버로 참여하고 있던, 또한 홍보를 담당했던 트램폴린의 경우가 생각났다. 사실 트램폴린은 인디 밴드라는 태생적 이야기를 벗어나서 좀더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홍보를 시도했다. 적극적으로 리뷰어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홍보 자료를 만들고 홍보 시트를 만들고, 정말 여러 가지 방법을 취했지만, 쉽사리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오랫동안 유지해왓던 우리가 그동안 옳다고 생각해오던 태도가 아니라고(굳이 이걸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생각될때 많은 생각이 들지만, 어찌되었든 우리는 계속 해나가야 하고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들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벽에 두서없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최근의 릴레이 장례식도 그렇고, 오늘 동일이어서 가지 못한 나키온 공연도 그렇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아직 정리는 안된다.  이만 쓰고 자야겠다.

참고로 이 밤과 이 글의 비쥐엠은 라흐씨의 통기타 연주입니다.

OH-AH! Nakion Live

- NAKION live set -
04/10 Friday 10PM / Club Monghwan (Queer Film Festival Party)
04/11 Saturday 9PM / Kunsthall (Opening of Kunsthalle Seoul)
http://www.myspace.com/naxnaxn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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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다녀오다.

나는 어렸을 적 공포영화를 보지 못했다. 가끔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로 영화를 본 날 밤에는 드라큘라가 날 찾아오곤 했다. 내가 공포영화를 눈 뜨고 즐길 수 있게된 건 좀비영화로 유명한 조지 로메로의 인터뷰 때문이다. 그 인터뷰에서 그는 좀비영화는 그것이 가지는 기괘한 폭력성으로 인해 공포영화는 공포가 아닌 코메디 영화라고 했었는데 (기억이 맞다면), 그 뒤로 좀비가 인체의 내장을 뜯어 먹어도 골수를 파더라도 잠은 잘왔다.

릴레이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릴레이에 갔었는데 그 때가 아마도 2006년으로 기억한다. 옥경씨가 내게 릴레이에 대해 물어봤었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관심과 취향은 방향을 같이했다. 소리 지르면서 공연을 볼 순 없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듣으면서 스텝은 밟을 수 있었다. 후원을 한 누구와 누구와 달리 나는 제대로 후원해본 적 없는 뜨뜨미지근한 팬이였지만 꽤 많은 릴레이 공연을 보았고 그들이 마지막에 참석해야한다는 의무감과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다.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반 정도 알거나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들이었다. 바뀐 음악 스타일만큼 외모가 변한 류한길씨가 인사와 인사를 했고 홍대를 떠난 애프터 아워즈에서 마지막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누가 들으면서 항상 같은 노이즈를 연주했지만 처음 릴레이에서 연주를 들었을 때를 떠 올리면 그들의 음악은 늘 변화한 듯하다. 그 변화라는 게 큰 틀 안에서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더라도. 우리는 릴레이가 보고 난 뒤 맥주를 먹었다. 하루는 가게 앞 땅바닥에 앉아서 하루는 편의점에서, 하루는 no stress cafe에서. 공연 뒤에 우리는 늘 말만 많은 청중이 되었다. 떠올려보면 좋았다는 말은 짧고 아쉽고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집에 갈 시간까지 이야기 하였다. 60Hz의 3파장 램프는 어디서 전류가 세는 것일까, 헤더는 어떻게 미약한 전자기파에 간섭당하는가. 그는 무엇을 했는가, 등 등 등, 그의 음악적 정점은 언제였드라 등 등 등.

친구에게 릴레이의 장례식 후에 대해 짧게 이야기 들었다. 장례식 뒤에 좀비가 되어 이 곳을 돌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뒤로 돌리고 싶었다. 도서관으로 가서 그냥 하던 공부나 마져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좀비에게 장례식은 사치이다. 좀비의 무덤과 자궁은 거리가 아니던가. 이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좀비가 되어 이 곳을 떠돈다면 가죽자켓과 하이힐을 신은 여자와 발정난 수캐들로 가득찬 이 홍대 앞 바닥을 무용수의 발걸음을 한 좀비들로 가득 차지 않을까.

릴레이는 끝이 났다. 농담으로 relay 뒤에 차단기라는 모임을 구성하지 않을까, delay라는 모임을 구성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들의 연주 모임은 끝이 났다. 우리는 압구정 거리를 방황했고 우리는 가슴이 깊게 파인 여자를 바라 보았다. 끝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끝이 끝이 아니므로.


인터넷 시대의 젊은 룸펜들에게 고함-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공연이나 갑시다.

 

일시 : 2009년 4월10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 라이브 클럽 쌤

연주자 : 스트레칭져니, 부나비, 타바코쥬스, 사우스베이 (from 부산)

입장료 : 예매 1만 2천원 , 현매 1만 5천원

 

일시 : 2009년 4월 11일 토요일 오후 8시

장소 : 클럽 보위 (구 아우라 / clubbowie.blogspot.com / 홍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거리)

연주자 : 전자양, 계똘똘 (of 로보토미), dydsu, 최종민 (of 로로스), 박다함 (of 불길한 저음)

입장료 : 5천원

 

일시 : 2009년 4월17일 금요일

장소 : 클럽 타

연주자 : 스트레칭져니, 갤럭시익스프레스, 플라스틱데이, 모베사운드

입장료 : 1만 5천원

the sinking of the titanic

08년 여름, 계똘똘과 박다함은 불싸조의 기타리스트 한상철씨에게 Gavin Brayers의 싱킹 옵 타이타닉을 같이 연주할것을 제의받게 된다. 09년 봄, 지지부진한 진행 중에, 계획된 날짜는 다가오고,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는 우여곡절 끝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모집한 끝에, 완성되었고, 그리하여 5인조 오케스트라는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를 원래 타이타닉호의 침몰일 4월 14일에서 3일 앞당긴 4월 11일 토요일 보위에서 연주하게 된다.

일시 : 2009년 4월 11일 토요일 오후 8시

장소 : 클럽 보위(구 아우라, clubbowie.blogspot.com, 홍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거리)

입장료 : 5천원

오케스트라 단원(연주자) : 전자양, 계똘똘 (of 로보토미), dydsu, 최종민 (of 로로스), 박다함(of 불길한 저음)

앨범 리뷰 (by 사토 유키에)

1960년대 Gavin Brayers는 처음에 Derek Bailey와의 프리 뮤직 여명기의 그룹 “Joseph Holbrooke”을 결성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도록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후 풋내기 아마추어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은 오케스트라 “Portsmouth Sinfonia”를 결성 (Brian Eno, David Cunningham, Steve Beresford, David Toop 등도 재적). 클래식의 명곡의 여러 가지를 아주 서투르게 연주해서 예측 불가능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 (락 명곡 버전도 있다). 최종적으로 그는 작곡이라는 방법론이 자신에게 제일 맞는다고 확신해 실험 음악의 작곡가가 되었다. 대표작은 . 1912년에 일어난 타이타닉크호의 조난 사고. 그 때 갑판에서 연주되어 있던 음악은 침몰하고 있는 배 위에서 어떻게 들렸는지? 정말 갑판에 있던 현악 6 중주의 악사들은 마지막 끝까지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리가 줄어들어 가다…단말마…SOS신호…. 그는 이 곡 때문, 당시의 신문, 수많은 유품, 사진, 희생자의 이름, 등 여러가지 수집해, 분석해, 정리했다. (여담이지만 YMO의 멤버였던 Hosono Haruomi씨의 조부가 유일한 일본인 승객이고 기적적으로 사라 났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1969년 작곡이고 1975년 Brian Eno의 Obscure label에서 첫번째 음반으로 발매됐다. 그후 버전 업 되고 이 음반에서는 60분의 롱 버전을 들을 수 있다. 덧붙여서 1990년에서 이 롱 버전의 원형이라도 말할 수 있는 콘서트를 수록한 CD도 발매되고 있다. 이것은 세계 제일 타이타닉크 오타크가 연주하는 궁극의 리퀴엠이다. 천천히 그리고 끝이없이 반복되는 엄숙한 찬송가의 멜로디. 진몰 후에도 그 선율은 영원히 울린다. 영화《타이타닉크》의 러브 스토리와 또 다른 불쌍한 음악가들의 마지막 이야기라고 상상력을 구사하여 감상해 주세요. 노르웨이 사람 작가 Erik Fosnes Hansen의 장편소설《Psalm at Journey’s End》를 같이 읽는 것도 권한다. (타이타닉크호의 악사들이 주인공이라는 꼭 맞는 스토리!)

http://www.gavinbrya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