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우파와 같아선 안된다. 신입생들의 빈속에 술을 넣어주고 각목을 쥐어주며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전경들의 향해 각목을 휘두르는 운동권의 모습이 부모, 형제, 학우 여러분 야스쿠니 신사에서 만납시다라고 녹음기에 외치며 비행기에 탄 일제시대 군인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던가. 그들에게 명복을.
좌파는 단두대로!를 외쳤고 우파는 사회안정을 외쳤다. 로베스 피에르는 혁명이 완수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틀을 만들기 까지 폭력은 과정이라고 이야기했다. 로베스 피에르가 사회안정과 통합을 이야기했다면(물론 그의 폭력은 또다른 사회안정과 통합을 위함이였지만) 자신들의 기득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안달이였던 브르주아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었을까?
인디음악은 대중음악에 있어서 대안이 되어야 한다.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인디라는 개념이 아직도 독립적인 제작과 유통구조 아래 있는 것이냐고. 인디에 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정의(definitions)로 인디라는 세계가 구축된 것이 아니라 인디라는 현상을 정의로 정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달의 어두운 면을 인디라고 한다면 달의 어두운 면은 달의 밝은 면을 대체하고 싶어할 것이다. 대안. 인디라는 말은 얼터너티브라는 말과 필요충분관계는 아니지만 인디는 얼터너티브의 서브스페이스(subspace)라고 말할 수 있다. 인디의 공간에서는 대안의 법칙이 자리잡고 있다. 대안은 패러다임이고 그것은 기존의 법칙들로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을 뒤집어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디는 대중음악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새로운 방법이 아닌 대중음악이 했던 시도들을 그대로 배끼고 있다. 실력없는 예쁜 외모의 가수가 인기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고 레이블은 밴드를 기획사처럼 키워내고 있다. 대기업 위주로 재편된 음원시장에서는 새로운 구조를 찾기 보단 대자본의 시스템에 들어가기를 갈망하는 신세가 되었다. 인디는 간택되었다. 아래에서의 문화가 아닌 위에서의 허락이 되었다. 인디라는 유령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자신들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좋아할 구석을 가지고 결제를 맡으러 올라간다. 나는 카페에 앉아 음악을 트는데 무서움을 느낀다.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알고 있고 카페라는 공간에 대해 알고 있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과 운영하는 사람들의 기호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귀엽고 차분하며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조금 신나는 음악을 틀어야 한다. 씨발. 음악을 튼다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며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나에게는 그 정도의 권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힘을 포기한다. 평론가라고 하는 집장님은 헛소리를 하고 있고 팬들은 의자에 앉아 밴드를 위 아래로 살펴본다. 열정은 소진되고 곁의 사람들 역시 하나 둘씩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여 이 곳을 떠난다. 인디가 대안이 아니라면 어디로 떠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을까?
운동권은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선배라는 이름으로 한 후보의 투표를 강요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장충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된 누구와, 권위의식을 배 밖으로 드러내 놓는 국회의원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모든 방법이 동일하며 목적만 다를 뿐인데. 좌파가 어려운 것은 우파가 구축해놓은 구태의연한 방법을 피해가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좌파가 아닌 이유는 피해자였던 그들이 결국 가해자였던 한나라당과 똑같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디가 어려운 것은 대중음악의 편입이 아닌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인디가 발전했다고 한다, 지난 10년동안. 발전이라는 단어는 정의가 필요한 단어지만 씨발, 좆 같은 소리하지 말라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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