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 for 7월, 2009

Saxon Shore 공연 후기

saxonshore saxonshore_equip

지난 7월 15일 일본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의 클럽 Alecx에서 열린
Saxon shore의 일본 투어 3번째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공연장은 Ssam보다 작았습니다. sgt.라는 정식 투어 서포터 밴드 이외에
EMPEROR TOMATO KETCHUP、MANT라는 2팀도 공연을 했습니다.
두 팀 모두 마츠모토 부근에서 활동하는 밴드입니다.

ETK는 3인조 기본 구성으로 귀여운 음악을 하는 밴드입니다.
스테레오렙의 앨범 제목의 밴드명을 봐서 예상했던대로
스테레오랩의 느낌이 가득했고 보다 단순했습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기타에 약간 문제가 있는듯 했는데
나중에 엿듣기로 최악에서 2번째로 나빴던 공연이라고 하더군요.

MANT는 5인조 밴드로 기타 3대와 베이스, 드럼의 구성이었습니다.
기타를 치며 보컬을 맏고 있는 팀의 리더는 동향출신의 Orge you asshole의
맴버와 형제라고 하던데 전혀 다른 음악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생의 맴버가 좀 더 여성취향의 부드러운 락 음악이라고 한다면
이들은 전형적인 슈게이징 밴드였습니다.
잔잔한 진행으로 시작해서 기승전결이 확실한 곡들을 연주했습니다.
웹에서 좀 더 찾아보려 했으나 MANT라는 밴드명이 너무나 평범한
단어였는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sgt.는 기타, 드럼, 베이스와 전기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성으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였습니다. 마치 예전에 한국에도 온 적이 있는 Mono를 연상케
했는데 나중에 밴드에게 Mono얘기를 꺼낸게 엄청 실례가 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아마 짐작은 하지만 말로 꺼낼 수 없는…

전기 바이올린에 이펙터를 사용하면서 짜릿짜릿한 순간을 만들어
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맴버들의 연주도 처음 보는 사람의 흥분케할만큼
힘이 났고 곡들도 좋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꼭 가보고 싶다고
(무대에서 말한건 아니고) 말했습니다.

Saxon shore의 첫날 도쿄공연이 매진된 것에 비해 마츠모토에서는
3~40명의 관객만이 찾아왔습니다. 주말에는 꽉꽉 들이찬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게되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전 2집이 발매되었을때 딱 도쿄를 여행중이었는데 지금은 웹으로
전향한 라이너스 레코드에서 미국반이 일본 전체에서 동이났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뒤, 무심코 지나치던 타워레코드에서
거짓말같이 진열되어있던 Saxon shore 2집을 집어들며 이런 개뻥이 있나,
코웃음치며 시디 뒷면을 보았는데 아니나다를까, 체코에서 수입된 앨범이었습니다.

이런 불굴의 공급 의지가 Saxon Shore를 일본투어까지 하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징그럽기까지 하네요.

이날 메인 공연은 50분이 할당되었는데 신작 앨범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예전 앨범들 보다 밝아진 분위기었습니다. 중간중간 2집의 곡을
연주했을 때는 정말 전율이 돋았습니다. 곡들이 조금씩 짧게 편곡된 느낌을
받았는데 1명이 오지 않았고 짧은 클럽 공연이었기 때문인듯 합니다.

일본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밴드들이 그렇듯 이번 앨범 곡 리스트를 보니
“Tokyo 412am”이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모과이가 그랬고 모비가 그랬듯
그렇게 자신들을 서포트해준다면 이정도 애정은 당연한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공연을 끝낸 밴드들은 P-heavy의 리더 치후미씨의 스시집에 모여
새벽 2시까지 마셨고 일부는 5시가 넘도록 자리를 지켰습니다.

속옷이 생기면 여자도 느나?

오래 전 부터 아워타운에서는 속옷밴드에 대한 zine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엔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가제) “속옷이 생기면 여자도 느나?” 라는 코너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속옷 밴드 zine에 들어갈 한 꼭지인데요,

쉽게 설명드리면

1. 가장 좋아하는 밴드, 베스트 3
2. 가장 좋아하는 책, 베스트 3
3. 가장 좋아하는 속옷밴드의 트랙
4.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5. e-mail 주소

자신이 속옷입은 사진을 찍은 신 뒤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주시고
hidros3@gmail.com 으로 이메일 주세요.
.
.
그러면 속옷밴드zine에 보내주신 사진이 올라갑니다.
.
.
.

(질문 내용은 zine의 편집방향에 의해 추가되거나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상정보는 안 물어보니 마음 편히 참여해주세요.)

이메일 주소가 공개되므로 누군가로 부터 이메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동의하시는 분들만 보내주세요. 공개된 사진을 통해 여자가 늘 수도 (남자가 늘 수도) 있습니다.

속옷이 생기면 남자도 느나?에 참여하고 싶은신 “여자”분이 계시다면 참여해 주세요.


에레나/마이티코알라/선결 공연

aaaaa

http://kuchu-camp.co.kr

http://elenajung.net
http://myspace.com/elenajung

http://myspace.com/mightycoala

http://sunkyeol.tumblr.com
http://myspace.com/sunkyeol

입장료 일만원입니다.
아워타운 여러분 많이들 놀러 오세요.

도착자

바닷가에 놀러가서 아마츄어 증폭기의 도착자를 듣고 싶었습니다. 저번주 추암 해수욕장 동해바다 해변에 앉아서 친구와 도착자를 들었습니다. 파도 소리때문에 작은 스피커를 두사람의 귀에 가까이 해야 했습니다. 인적이 드물고 컴컴한 작은 밤바다는 좀 쓸쓸했는데 음악을 들으며 앉아있으니 그러한 기분은 사라지고 한적하고 분위기 있는 밤바다가 되더군요:)


엔반 잼보리 요약

2006년 여름, 무심코 찾아간 동경 코엔지의 엔반 주인장 타구치씨의
친절한 안내로 이런저런 밴드를 알게되었고 한해 2번씩 열리는 엔반잼보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09년 여름,
드디어 엔반의 축제에 동참할 수 있었다.

코엔지 엔반은 클럽 보위의 절반도 안될만큼 협소한 공간인지라 잼보리는
시부야의 클럽을 빌려서 진행한다. 5층, 6층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데
5층은 본격적인 공연장이고 6층은 음료바와 로비, 작은 무대가 있고
앰프출력이 적은 밴드들이 주로 6층에 자리잡는다.

금,토,일 3일동안 진행되는데 3일권을 끊으면 5000엔정도로 저렴해진다.
1일권도 2000엔정도니까 부담없는 편이다. 음료권 500엔은 별도.

첫날은 여성 노이즈 밴드 니센넨몬다이(nisennenmondai)의 레이블축제였다.
무려 “미인(비진)”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는 적었지만 실력들이 대단했다.
정작 니센넨의 본 공연은 한 곡으로 끝났지만 동료 아티스트의 공연에
세션 파트로 들어가는 형태로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회장 입구에서는 farewell이라는 무료 매거진의 특집호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축제에 맞게 니센넨 맴버가 커버였다.
7개정도 가지고 왔으니 관심있는 분은 리플바람.

둘째날 부터는 본격적으로 2개 층에서 진행되었다.
Je sei라는 듀오의 공연은 있다씨의 모습을 연상케했다.
5,6층은 외부 계단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데 집에 돌아갈땐 정말 쓰러질 정도로
힘이 들었다. 꽤 오랜 기간동안 잼보리 진행의 노하우가 쌓였던 것일까,
공연 진행은 정말 매끄러웠다.

시간표가 어긋나는가 싶어도 20분짜리 구연동화코너가 있는가하면
단편 필름이 상영되기도 하고 기타 하나로 충분한 포크싱어의 무대가 있어서
밴드의 무대에 흥분된 관중들을 달래주기도하고 다음공연 준비시간이기도 했다.

오사카 출신의 미도리라는 밴드를 기억하시는지.
2년전 처음 디비디를 구입해서 동아리 상영회에서 틀기도 했었는데
이젠 소니와 계약한 어엿한 메이져 펑크 밴드가 되었다.
그러나 엔반에서 이름을 널리알릴 수 있게된 감사의 마음에서인지,
시바라쿠-요시노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기본적인 미도리.의 포지션으로 출발했지만 왠걸, 스윙재즈풍으로 시작했다.
고토마리코는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고토마리코의 기타 없이도
미도리가 늘 그랬듯, 거센 노이즈의 덩어리가 되어 공연을 끝냈다.

에디마콘(eddie marcon)의 공연은 예전에 엔반에서 본 적이 있었다.
최근 앨범이 엔반챠트 1위에 올라서인지 시작에 맞춰 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매력적인 밴드가 있을까.
Low보다 느린, 플룻과 섹소폰소리의 고요한 솔로.

오시리팽팽즈(oshiripenpenz)는 기타,드럼, 보컬의 3인조 밴드인데
눈이 시원해질만큼 잘생기고 근육질 보컬의 엉뚱함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연장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노래하는 사람을 보았다.

셋째날, 곧 한국에도 오게될 Asuna의 무대가 첫번째로 있는 날이었다.
도쿄홀릭이라는 이름으로 6명의 아티스트가 테이블에 온갖 장비와 장난감으로
소리를 만들었다. 6층은 이렇게 노이즈 아티스트, 재즈 밴드등이 자리잡았다.

Prefuse73의 무대를 연상케했던 도라무노(doramuno)는 3대의 드럼이
무대 밑 관중석에 자리잡고 있었고 시작과 동시,정신없이 리듬을 쏟아냈다.
드럼사이의 관중들은 신나게 춤을 추고 비트는 정교하면서도
저절로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세츠루키리코(セシルギリコ)라는 여성의 무대였다. 혼자 무언극을 하는가 싶더니
순간 스트립쇼가 벌어졌다. 그리고 소품으로 가지고나온 권총으로 자위를 했다.
틀어 놓은 옛날 엔카가 끝나자 옷을 챙겨입고 “너희들, 여자를 울리면 안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엔반 잼보리는 단지 밴드만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시험장이었다.

마지막날은 Asuna씨와 시바타씨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여러 밴드 맴버들을 소개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둘째날의 에디마콘 맴버들과도 인사를 했다.
8월말에 테아시(Teasi)와 같이 공연을 할 거라는 정보를 얻었다.
테아시는 6년동안 20번만 공연한, 정말 고요한 밴드이다.

Asuna씨에게 시부야의 바르샤바 레코드에서 50%세일을 한다고 해서
잠깐 나갔다오기도 했는데, Barsuk 레이블의 시디를 싸그리 긁어왔다.
그러다가 아후리람보 맴버 오니의 솔로 공연을 놓칠뻔하기도 했다.

3일내내 6층 로비에서는 카레와 케잌을 팔았다.
코엔지 엔반은 주중 스케쥴의 대부분이 카레 대결로
구성되어있는데, 농담하는게 아니라 정말 클럽에 모인사람들이
두 사람의 카레 맛을 두고 승자를 가린다고한다.
그리고 연말에는 최종왕중왕전까지 열린다고하니 말다했다.
물론 3일동안 다른 사람의 카레가 나왔다. 한 그릇에 500엔이다.

작년에 엔반에 갔을때 점장인 타구치씨에게 엔반잼보리의 티켓값이
너무 싼게 아니냐는 질문을 했었다. 그러자 아무렇지 않게 그냥 엔반의
아티스트를 아는 사람들이 노는 자리를 만들고 싶을 뿐이라는 답을 했다.

로컬 씬의 전초기지가 되는 장소, 아티스트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밥을 먹고 교류를 하는 장소를 꼽으라면 홍대에서는 어디를 말할 수 있을까?
보위? 빵? 쌤? 이리까페? 아직 없다면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레 대신 떡볶이?)

여러모로 지난 몇 년간 홍대를 위한 아워타운이니 뭐니 떠들며 남몰래 사랑했던
코엔지씬에 대한 탐구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었던 3일이었다.

자세한 공연후기는 차후에 아워타운이나
개인블로그등을 통해 업데이트 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월 – ‘네가이곳에서….’

우리의 청춘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신촌 맥도널드 앞에서 만나 마을버스를 타고 이대 후문으로 갔던 청춘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영국에서 샀다는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친구는 어디에, 머리가 아직은 길었던 칼머리를 한 친구는 신혼여행에서 잘 돌아왔을까?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굴다리를 지나 신촌으로 되돌아갔지, 그곳이 우리의 시작점이였던 것 처럼.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어. 잠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 들었던 적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는 졸리지 않았어. 그들은 그들의 발만 바라 보며 연주했지만, 내가 본 것은 그들의 등이었지만. 내가 그들의 얼굴을 온전히 본 것은 아마도 첫 정규반이 나오고 온라인 샵에 붙은 광고 사진에서 였을거야. 지금도 길을 걷다가 만난다면 알아볼 수 없겠지. 음반 두 장 이외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그들과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은 우리들 때문에 그들을 기억하려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의 카페트를 들추어야 하지만, 알아, 그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조월의 음반을 발매 되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샀어.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초판이 다 팔려서 재판을 찍었다고 하더라. 음반을 산 뒤 듣고 싶어서 집으로 뛰어갈 그런 열정은 사라진 것 같지만, 집에 들어와서 한 일이라곤 노트북을 열고 일상적인 정보들을 채칩한 것이지만, 나는 불을 끄고 20년 전에 산 듯 하지만 한 번도 전구를 갈아 낀 기억이 없는 스탠드에 불을 켜고 그의 음악을 들었어. 왜 지금일까 라는 생각을 해. 왜 나는 지금 이 음악을 듣고 있는가를 생각해. 왜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지난 과거의 한 순간과 웃음과 그 중심에 있는 지겨운 밴드를 떠올리는 지 모르겠어. 그 때의 일상적이거나 혹은 대단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왜 지금에 와서 내게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었는지 모르겠어. ‘우리는속옷도생겼고여자친구도늘었다네’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앨범 커버를 보고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은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의 커버를 보았어. 유사점이란 이런 소소한 것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렸지만 같은 사람의 그림이라고 생각이 드는 커버 같은 것들. 다만 밴드 맴버의 이름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지만, 그들이 맴버간의 불화로 밴드를 그만두었다고 어디 다리 하나 건너 들은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이 음악을 들었을 때의 나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아무 것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는 28살이 되었고, 너는 29살이 너는 30살이, 너는 25살이, 우리는 모두 그 때의 모습일랑 남아있지 않았겠지만, 나는 궁금해. 우리가 다시 10년, 크랭키의 15주년, 서브팝의 20주년과 같은 시간을 보냈을 때, 서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을런지에 대해서. 너는 집이 비어 있을 때 종종 가서 고양이에게 밥이나 주라고 했고 나는 아직 그러지 못했지만, 너는 그들에 대한 진을 만들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 했다지만 (2009년 7월 4일인데 진행은 되고있나.) 너는 animal collective의 firework이 더 좋다고 했지만. 여전히 더운 혹은 바람이 부는 늦은 밤 거리를 걸어가 하고 싶은 것은 농담이나 하면서 자랑을 늘어놓으며 웃고 떠드는 것.


물질주의자에게

아워타운은 말이 많습니다. 하이퍼텍스트의 세계에선 선형적인 종이보다 50%는 짧게 써야 한다고 수사학자는 이야기 했지만 어느 사이에 타자는 손보다 빠르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워타운이 어렵다는 말을 듣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상반기 앨범을 50장이나 뽑았지만 저는 거기서 고작 몇 장의 음반을 들었고 그 보다 더 적은 음반을 샀습니다. 더 적은 음반이 빠져나간 자리를 몇 장의 mp3가 메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제가 양심적이다라고 생각했고 그 증거를 물질로 삼았었습니다. 나는 음반을 사고 너는 음반을 안사니 고로 내가 우월하다. 너의 폴더 속의 파일보다 나의 책장을 채워가고 있는 음반이 더 가치있다. 하지만 최근에 음반 사는 양과 음악 듣는 양을 생각해보니 제게는 수십장의 음반을 다운 받을 뻔뻔함과 무모함도 없지만 그렇다고 음반을 다운 안받는 것도 아닌 그냥 조금 덜 나쁜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르바이트 한 돈이 몇 푼 주머니에 들어왔길래 field records에서 겨우 2장의 음반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명이 될 것이라는 압니다. 6개월이 지나면 다시 물질로 귀의할 수 있을까요? 1년이 지나면 다시 귀의할 수 있을까요?


짤븐 도전과 실패의 기록

나의 유학준비는 작년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의 지구 신체 나이는 그때 벌써 35세였다.
나의 그때까지의 작업물은 다량이었으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원한 이 학교는 입학생의 나이제한이 만 35세였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고려했다, 하지만 학교의 성격이 개인적으로 문제가 되어(학교가 일단 예술학교다.
콘템포러리 예술 스튜디오 라는, 그리고 나는 아시다시피 예술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는 편이다.
그리고 이 학교는 뭔가 엘리트주의의 산물인 곳이라는 혐의가 짙어 보였다.)
그런 의문에 마지막까지도 결정짓지 못하다가 급하게 하룻밤만에 DHL급송으로 보냈었고
(하룻밤에 날밤까고 도큐멘트를 완성하고 DVD굽고 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예상과는 달리 서류지원에서 합격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거 뭔가 붙으리라는 예감이 있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6월 30일 오후 3시 십분까지 학교로 오라고 메일이 왔었다.
나는 당일 오후 1시 쯔음 학교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시간, 점점 긴장이 되었다.
나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다.
몇일전에 릴에 왔을 때부터 여기 다니는 학생들로부터 코멘트와 충고들을 들었다.
뉴 테크놀러지를 2년째 프로젝트에 반드시 써야 하는데 이 2년째의 프로젝트를 잘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파노라마11이라고 전시회도 하고 있는데, 여기 학생들의 졸업작품전 비슷한 전시회이다.
여기 작품들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작품들이 썩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벌써 실망하고 있었다. 이 학교에 대해서,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마도 대부분 그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실패작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은근히 붙으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한 남자가 나를 불렀다.
그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걸어 들어가는데 낯익은 음악소리가 들렸다.
내가 보낸 음악CD의 노래.
한 예술가 삘 나는 아주머니 같은 분이 인사를 했다.
프랑스어 할줄 아냐고 물으셨다. 나는 언쀼-조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프랑스어로 물어볼까 영어로 물어볼까 물어보셨고
나는 영어로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남자분과 아주머니가 조금 어색해 하셨다.
물어보시는데 영어가 조금 서투르시다.
나는 내내 영어로 대답했는데 못 알아들으시는 것도 많고 그래서 노트에다가 몇몇 단어는 표기를 해 보였다.
우선 음악이 좋았다고 하셨다.
어떤 악기를 다루는지.
어떤 음악가를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는지 물으셨고
나는 빈센트갈로를 좋아하고 그의 미니멀한 제작방식을 선호하고 영향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펫셥보이즈의 영향을 받은 일렉트로니끄 음악도 만든다고 하였다.
의외였다. 음악얘기로 시작할 줄이야. 나는 계속 내가 보낸 영화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보낸 도큐멘트의 여러가지 개념을 설명하고 1년째, 2년째의 영화작업들에 대해 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는데 얘기하는 데 나 조차도 논리적이지 못함을 깨닫고 있었다.
듣는 두분은 프랑스인에다 영어도 서투르시고, 엎친데 덮친격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느낌을 노래하는 시간을 갖고 이것이 나의 라스트 챤스였으므로
떨리는 마음으로 즉흥으로 노래했다. 눈을 감고,
다 부르고 눈을 뜨고 메르씨, 나는 미소지었고, 인사하고 나왔다.

기다리는 시간, 나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겸허히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고
예정된 시간에서 20여분이 더 지났을까, 게시판에 공고가 나왔다.
쁘띠오랄의 합격자들을 위에서 부터 아래로 훌터 내려보았다. 물론 거기에 내 이름은 없었다.
아내는 괜찮나? 물어보았다. 난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로써 나의 라스트 챤스는 아마도 적어도 네 사람의 기억속에는 있는 그런 사건이 되어
마치 하나의 단층처럼 나와 아내의 삶 속에서 존재하게 되었다.

앞으로 시험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드리고 싶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나름의 논리를 세워야 한다.
만약 이러한 시험을 프랑스에서 치른다면 프랑스어를 중급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프랑스어 질문 정도는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질문의 대답 정도는 프랑스어로 할 수 있어야 한다.(영어만 유창하게 해도 된다고 학생들이 그랬는데 이런 것은 요행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원하는 학교가 진정 자신이 가고자 하는 학교인지 되묻고 되물어 보아야 한다.
또 하나 나의 도전기에서는 ‘ 뉴테크놀로지를 반드시 사용하는’ 프로젝트를 설명해야 했는데, 그 ‘뉴테크놀로지’라는 것이 애매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콘템포러리 영화’ 만큼 손에 잡히지 않는 물체였다.
앞서 이 학교의 한 학생의 불만을 들었었다. 한국에서는 콘템포러리 영화를 접할 수 없다고, 차단되어 있다고 말이다.
내가 약 1달 동안 프랑스에서 있으면서 내가 접한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그 콘템포러리하고 뉴테크놀로지한 것들이 지금 이 시대, 이 땅에,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무지는 내 나름의 논리가 아직 정립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실패작들로 도배된 전시회 탓일까?

나의 짤븐 도전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 뒤의 젊은이들에게 충고의 글을 남긴다.

공연하나.

사라방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