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 for 9월, 2009

wolfgang amadeus phoenix

1901(그들의 새 음반에서 처음 공개되었던) 비디오를 보았을 때 들었던 단어는 2가지였다. 좋다와 지겹다. 그들의 전 음반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내용이였을 것이다. 늦은 밤, 친구들과 간 바에서 그들의 음악을 틀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나는 직원에게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좋죠?”

첫 트랙 Lisztomania의 인트로가 흘러나올 때 새삼스레 탄식하게 된다. 아, 내가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구나. 그들은 첫 트랙을 통해서 이 음반을 요약해서 듣는 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고개를 살랑 살랑 흔들리게 하는, 수줍게 스탭을 밟게 만드는 리듬과 목소리. 그들은 Liszt가 최초의 락 스타였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전 앨범을 들을 때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지하철에서 몸을 흔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들이 에디 슬리먼의 뮤즈였다는 사실 또한 이제는 별 의미없는 정보에 불과하다. 음악은 배경에 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전경으로 올라왔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다 우리가 그 때 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는지가 우선하게 되었다. 뮤직바 빛에서 R.E.M와 소닉유스의 음악을 경쟁적으로 신청하며 들었을 때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술을 마시고 그 앞 카센터 담벼락에 토를 하던 것만 기억이 나는 것 처럼.

그들의 음반을 사려하지 않았다. 음반을 살 때 한 장만 카드 결제하는 것이 미안하여 가장 눈 앞에 있던 것을 들었다. 그들의 음반은 한 장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 음반에서 그들의 모든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Wolfgang AMADEUS PHOENIX라고 써놓은 타이틀을 보고 생각했다. 생각이 이어졌다.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생각이라는 동사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 피닉스, 그들이 들어낸 자신감에 큰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피닉스에게 기대하는 것은 늘 같지 않았던가. 그런 기대감을 개인에게 대입했을 때 말할 수 없이 슬플지라도.

그들이 Steve Reich를 많이 들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단지 팝그룹이길 바라지 않는듯 했다. 그 전부터 포스트락이라는 단어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요소들을 그들 음악이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긴 시간의 트랙을 음반에 넣고 싶어했다. 나는 그들의 이런 면이 다른 밴드와 다름을 만드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것만 보여주지 않았고 들어줄 수 없는 트랙을 양산하지도 않았다.

“두 두 두 두”

주기적인 펄스는 춤을 추게 만든다. 판을 뒤짚는데 걸리는 약 20여초. 키보드로 찍은 드럼비트, 누구는 디지털로 만들어진 소리를 싫어한다고 했다. 난 그 말에 동의하지 못 했다. 르네상스 시절 음악은 수학의 일부분이였다.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사람을 들뜨게 한다. 그것이 계산된 결과이든 우연에서 출발하였던 간에 그것은 그들의 능력이고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영어 발음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들이 프랑스어로 말할 때 비로서 그들이 프랑스 밴드임을 떠올렸다. 그들의 음악을 들은지 긴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흐느적 거리며 몸을 흔들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Wolfgang인지 It’s never been…인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음악을 들었던 순간이 전경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안 팔리는 뮤지션들은 피해의식이 많다.

네이버 블로그 지니님에게 말하고 글 퍼왔습니다
http://blog.naver.com/afx1979/90068381502

더 팔려야 하는데 한국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안 팔렸다. 즉 자기 탓이 아니라 환경탓하기. 근데 나는 팔려야 한다는 생각부터가

웃긴 거라고 생각한다.

안 팔리는 뮤지션들은 대체로 오버쪽 뮤지션들에게 피해의식을 갖는데, 그건 오버쪽 뮤지션들이 자기들 몫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생각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식의 피해의식에 대해서 내가 할말은 최소한의 팔리려는 노력은 해보고 그런 얘기를 하느냐는 것이다. 홍보가 안된다고

불평을 하는 인디 밴드도 있는데 홍보는 자기가 혹은 레이블에서 스스로 하는 거 아닌가. 그걸 안해놓고 홍보가 안되는 걸 누구 탓을 하나.

내가 보기에 이런 한국 인디 밴드들의 어리광은 경쟁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 외국처럼 인디 밴드들끼리 경쟁이 심하면

저런 우는 소리는 안나오게 된다. 진짜 좋은 음악만이 선택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도 스스로가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전통을 통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오히려 한국 인디 밴드를 너무 어리광을 받아줘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디 밴드라고 무조건 음반을 사줘야 한다는 둥. 아니 무슨

소비자가 자선사업가인가. 자원봉사단체인가. ~해야 한다 라는 이런 사고방식이 이미 글러먹었다. 음악은 욕망이다. 듣고 싶으면

듣는 거고 갖고 싶으면 갖는 거다. 그럼 뮤지션의 목표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듣고 싶고 갖고 싶어하는 음악을 만들면 되는 거다.

그게 싫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거 만들어놓고 자기만족이나 하든지. 근데 자기만족성 음악을 만들어놓고 안 팔린다고 징징대면 어쩌자는 건가.

내가 보기엔 인디 밴드들이 안팔리는 건 90% 이상은 인디 밴드들 자신의 탓이다. 팔려야 하는데 안 팔린다, 환경이 열악해서, 이런 식의

피해의식들은 그들을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다. 그럼 국가가 지원금이라도 내야 한다는 건가.

요즘엔 한국 인디 밴드도 팔리는 밴드는 잘 팔린다. 만장 넘는 앨범도 많이 나오고 있고. 물론 안 팔리는 인디 밴드들은 저런 팔리는

인디 밴드들을 욕한다. 자기 몫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안 팔리는 걸 무슨 대단한 훈장인 것처럼 생각하는

동시에 자기들 작품은 꼭 많이 팔려야만 하는 그런 당위를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음악하기가 힘들다는 건 이해한다. 근데 일단 자기가 만들어놓은 음악을 보고. 그게 팔릴지 생각을 좀 해보자. 팔릴 거 같은가?

처음부터 그걸 기대하고 만들었나? 왜 안 팔릴 거 같은 음악을 만들어놓고 안 팔린다고 징징대는 건가. 적어도 자기 작품의 반응에

대해서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팔려고 만든 사람들이야 안 팔리면 안되는 거겠지만. 근데 이런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은 의외로 안 팔려도 별로 징징대지 않는다.

왜냐하면 팔려야 한다는 당위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 팔리는 게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프로의식이 강하고 잘 팔리는 걸 만드는 법이다. 즉 안 팔리는 건 전부 자기탓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원래부터 자기가 좋아서 만든 음악은 안 팔려도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대체 왜 피해의식을 갖는 건가.

mp3에 대한 피해의식도 오버보다 인디가 더 강하다. 언뜻 보면 자본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지향하는 인디가 mp3를 더 선호할 거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내가 인디씬의 신화를 버린 것이다. 자본에서 자유롭기는 개뿔. 인디는 전혀 반자본주의가 아니다.

그저 가내수공업일 뿐이다. 수익을 위해서 상품을 만드는 건 똑같다. 그리고 mp3가 인디에 더 많은 타격을 주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

내가 싫은 점은 인디는 저렇게 수익을 위해서 상품을 만드는 건 똑같으면서 뭔가 자기들은 다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들은 수익 말고 다른 어떤 숭고한 더 고차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근데 다르긴 개뿔 뭐가 다른가.

아, 하나 다른 게 있다. 피해의식이 많다는 거. 자기 작품은 팔려야 하는 당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는 거. 졸라 세상에 대해 징징대고

어리광을 부린다는 거. 저런 피해의식들을 빨리 버리고 빨리 자기탓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상태만 더 나빠져갈 뿐이다. 피해의식은

그 누구보다도 자기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들도 그런건 싫어한다. 타인의 피해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건 빨리 버리고

자기탓을 하고 그래서 더 강해지고 더 좋은 음악을 만드는 수 밖에 없다. 환경이 나쁘면 스스로 고쳐야지. 왜 남탓을 하나. 외국의 좋은

환경들은 다 국가가 세금으로 만들어 준 줄 아나. 그거 다 뮤지션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좋은 음악이 좋은 환경을 만든다. 브로콜리 너마저, 오지은, 이런 음악들 홍보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음악이 좋다는 그거 하나만으로

만장, 오천장 넘게 팔렸다. 좋은 환경은 국가나 소비자가 만들어서 인디 밴드들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음악의 힘으로 인디

밴드들 스스로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p.s.

세상엔 피해 없는 피해의식도 존재한다. 안 팔리는 건 피해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피해로 받아들이고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장 약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피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반대로 가장 강한 사람은 아무것도 피해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법으로 정해진 피해만을 피해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나마 강한 편이다. 모든 사람이 다 서태지처럼 초인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모두가 다 징기스칸처럼 될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예를 들어 자기 바로 앞에서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걸 피해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근데 진짜 문제는 세상의 수많은 피해의식들은 대부분 이런 종류의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고통을 느낀다고

전부 피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게 신호등이든 안 팔리는 것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냉정한 거절의 말이든 문자에 답장을 해주지 않는

것이든 맘에 들지 않는 덧글이든 책이 물에 젖은 것이든 라면이 맛없게 끓여진 것이든 뭐든 간에.

약한 사람일수록 무엇을 피해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목록이 늘어난다. 강한 사람일수록 짧은 목록을 가지고 있다. 약한 사람들은

고스톱에서 운이 안좋아도 그걸 피해로 받아들이고 피해의식을 갖고 기억하기도 하며, 강한 사람들은 교통사고를 당해도 낫자마자

바로 잊어버린다. 이런 종류의 강함은 단순히 권력이나 돈이 많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유리하긴 하겠지만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 유리하다는 것은 예를들면 연애가 잘되는 사람은 왠만한 외부의 자극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행복에 몰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육체적, 사회적 강함과 심리적 강함 간의 관계는 그래서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꼭 비례 관계인 것도 아니다. 육체적, 사회적

으로는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심리적으로는 약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심리적으로 강한 사람이 대체로 육체적, 사회적 강함도 획득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그것을 원할 때만이다. 모든 심리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다 그런걸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비례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

이다. 육체적, 사회적으로 강해야 심리적으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약하다.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예민하다.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고 나약하다. 단순히 육체적, 사회적으로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약하다는 거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약하다고 해도 이 심리적 강함은 상대적으로 육체적 사회적 강함보다는 획득하기가

더 수월하다. 일단 아는 것부터가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심리적 강함을 추구하려는 방향성을

갖는 것 자체가, 즉 시작이 반이다. 철학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강함은 육체적 강함이나 사회적 강함이 아닌 심리적 강함이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저도 얘기 나누고 싶네요

몇가지 생각

몇가지 생각을 적어 보겠습니다.
포스팅이 잘 안 되는 곳에 포스팅할려니 가슴이 떨리며 흥분이 됩니다.^^
초청자, 게스트 리스트라는 관행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관행이 공연의 질과 뮤지션에 대한 수익 배분에 있어서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청자들로 공연장을 채운다면 분위기는 좋겠지만요, 친구들 앞에서 공연하는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음악가들에게 돌아가는 정당한 수익도 별로 없게 되구요.
이것은 음악가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음악가들도 왠만하면 무료입장으로 들어가지 말고 입장료를 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동료들을 응원한다는 기분(심정, 마음)도 들테고-전달될테고 말입니다.
(티켓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좋겠지요. 음악가들이 어떤 클럽에서 공연을 하면 수익의 일정부분을 티켓으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티켓을 나중에 다른 음악가들이 공연할 때 입장료 대신에 낼 수 있게끔 하는 것이지요. 모든 클럽들이 공통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요.)

어제 오백에서 라운드로빈을 보았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악몽이었습니다.
오백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사운드가 최악에 가깝습니다. 근방 공연장 중에서는.
그런데 그게 한편으로는 매력적이기도 하겠지요.
어제 한차례의 돌기(Round)를 보고, 젠타피 한곡을 듣고 나왔습니다.
담배연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습니다.
싸이보그씨의 기획도 좋지만, 조금 더 재미있고 즐겁게 공연도 하고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물로 입장료 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조금 더 생각하여보면. 내 동료 음악가들을 응원한다고 생각하면 아깝지가 않아요.
내 친구, 동료들. 이걸로 수고한 값에 보탬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시디 판 걸로 이렇게 입장료를 내니 얼마나 보기 좋나요?(자화자찬!)

요약하면 게스트리스트의 관행에서 벗어나 보자.
음악가의 입장에서 관객의 입장에서도 재밌는 기획이 있더라도 좋은 공간안에서 벌여졌으면 좋겠다.
음악가들의 무보수 공연을 조금이라도 고쳐보도록 노력하자.
음향 어시스턴트가 없는 공연장은 보이콧하자.
뭐…그런…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소심하니까요.

바다비 목요공연 짧은 후기,

1. 시레나

듀엣 ‘아로새기다’로 빵에서 활동한 바 있는, 연애송들을 보편적 감성으로 노래하는 원맨 뮤지션. 절절함이 좀 더 가미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빵 찌라시를 펴보니, 오는 10월 1일 목요일에 빵에서 공연이 잡혀있네요.

 

2. 후앙 융블라

연습 부족과 노골적인 쌈마이 각이 눈에 띄지 않았나 싶어요.

 

3. 나나기타

공연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하고픈 말들이 생기기도 했고요. 공연이 끝나고서는 왠지, 일종의 소년만화를 한 편 본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 음, 뭐랄까, 소년만화에서나 찾을 수 있었을 법한 건강함, 세계에 대한 끈질긴 투쟁, 위협자라기 보단 경쟁과 극복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타자, 그런 이미지들, 음, 결론은 다음 공연이 정말 기다려진다는 겁니다. 연주는 물론 영상도 퍽 인상적이었어요. 다른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4. 경화수월

친구들끼리 놀다가 공연까지 하게 된 삼인조 밴드로, 말랑말랑 연애송들을 불러주셨어요. 매력있는 멤버들도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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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는 26일, 27일에 난지공원에서 ‘서울 캠핑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네요. 참가비는 무료고, 선착순 3000동만 접수 받는다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아, 참여밴드는 브로콜리너마저, 로로스, 오지은, 마이앤트메리, 포니, 국가스텐 등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까페에서 찾아보세요!

http://cafe.daum.net/ideamasters

ASUNA


asuna


asuna and dydsu


asuna

8월 29일 공중캠프에서 있었던 ASUNA의 한국 공연에 대한 사진입니다. 좀 더 사진을 많이 찍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음악듣고 노느라 사진 많이 못 찍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친구의 사진기로 신나게 찍은 것 같네요.


아마츄어증폭기 – 수성랜드

우린 아마
추어 증폭기

“사계절 스폰사”를 들을 때 나는 가사를
아마 “추억” 증폭기로 들었었다.

아마 추어 증폭기라는 것을 안 것은 조금 전 가사집을 펴봤을 때였다. 8월 8일 그의 앨범 [수성랜드]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13일 무대륙에서 그의 공연이 있었다. 그는 공연 도중에 [수성랜드]에 대해서 아마츄어증폭기의 탈을 쓴 음악이라고 하였다.

‘오로지’가 실재세계속에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대륙에서의 공연은 탈을 쓴 음악가가 한 공연이 아니었는지. 그렇기 때문에 다들 그 탈을 쓴 아츄를 믿었던 것 같고.

아마츄어증폭기의 2008년 2월 17일 팔도 인디 공연이 그의 공식적인 마지막 공연이었다. 우리는 가끔 그의 공연을 만날 수는 있었지만 기억에 의하면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 대신에 아츄와 같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이름으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눈의 피로에서 아마츄어증폭기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는 그 연관성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는 아마츄어증폭기의 소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아마츄어증폭기는 그 중 하나의 캐릭터인데, ‘결혼’과 ‘죽음’과 함께 소멸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받씨의 결혼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 존재의 의미가 소멸되었다고 믿습니다. 음악함에 있어서도 정말 개인적인 접근인 셈입니다.아마츄어증폭기의 가동에 있어서의 에너지원은 한받씨의 ‘생활’과 ‘감정’인 셈인데, 그 감정의 95퍼센트가 혼자 사는 한 남성의 그것이고, 나머지 5프로는 아버지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의 주체성과 대상이 사라짐으로 해서, 존재의 가치와 의미도 소멸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츄어증폭기의 공연을 처음 보던 그 2005년의 겨울을 떠올려보면 그는 춤을 추며 ” 쿠오다비스 도미네, 이젠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외쳤다. 녹음된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앨범의 어떤 틀을 들여다 보면 그것은 외부(마포소년소녀합창단이나 야마가타 트윅스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아마츄어증폭기 안에 오래 전 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기억하려 한다. 그 때는 몰랐다. 그리고 음반을 듣기 전까지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의 한받은 아마츄어증폭기로, 아마츄어증폭기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로 분화되었다. 결국은 한받이라는 뮤지션으로 수렴됨에 있어서 그 길목에 아마츄어증폭기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마츄어증폭기는 스스로의 탈을 쓰고 있을 것이다. 뼈를 들어내고 리얼리즘 혹은 자연주의를 표방하던 아마츄어증폭기는 표현주의로 넘어가고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스트로크의 에너지가 줄어들었을 때 엉성한 드럼 비트 위로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는 야마가타의 방법론이 추가되었다고 하지만 그 방법론은 아마츄어증폭기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처음 봤던 공연에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추리이다. 이젠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춤을 추지 않았다.

[수성랜드]를 들으면서 불꽃놀이를 떠올렸다. 화약은 높은 곳에 올라 불꽃을 만들고 재가 되어 하늘로 흩어질 것이다. 이미 화약은 재가 되었고 과거의 흔적인 불꽃을 지금에서야 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2008년 2월에 그는 소멸하였고 2008년 여름부터 한받은 아마츄어증폭기의 음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퇴행적이게도 아마츄어증폭기의 노래들이 휘발되고 있으므로 해서 그것을 기록해두자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츄어증폭기의 노래들이라는 사실에 집중했습니다. 이건 눈의피로도 아니고 야마가따 트윅스터도 아니고, 가요도 아니고, 팝도 아니고, 포크도 아니고, 펑크도 아니고, 마포소년소녀들이 부르는 합창도 아니고 아마츄어증폭기가 부른 노래들이라는 사실에 집중했습니다. 유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무거워졌고 노래나 스트로크나 목소리속에 슬픔이 내재해 있음을 알고 또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아마츄어증폭기를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보고 싶었던 아마츄어증폭기를 8월 13일에 보았으므로 아무도 그 탈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꽃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광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수성랜드]를 들으며 불꽃놀이를 떠올렸다. 불꽃이 터질 때 마다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빵 앞에서 그가 그 때의 여자친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던 모습을 가까이서 훔쳐본 적이 있다. 그 때 음악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장면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였다. [수성랜드]를 들으며 지나간 여러 지점들을 생각하였다. 나는 아마 추억할 것이다.